치유 Healing Moment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2-26 13:11본문
작곡가 이혜성교수의 창작 음반 “치유 Healing Moment”가 출시되었다.
2002년 “이혜성 in Green”과 2007년 “미소” 에 이은 이번 3집 음반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수록 되었다.
영, 육간의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작업한 이번 음반에는 슬픔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눈물의 미소를, 궁극적으로 청중에게 선사하고자 한 바이올린 독주곡 “미소 III”이 “치유”의 근원이 되었다. 치과 치료의 고주파 모터소리를 상쇄하기 위한 부드러운 소리작업이 담긴 현악앙상블 “치유 II”, 수백 개의 얇은 얼음판이 겨울호수 햇볕 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나는 신비로운 치유의 순간을 첼로10대로 표현한 “치유 IV”, 단 한 순간이라도 우리의 가슴 속에 파고들어 치유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작곡한 클라리넷 트리오 편성의 “치유 I”, 타악기 트리오의 맑은 음색 안에서 명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치유 III”, 그리고 바리톤을 위한 가곡 두 편인 이해인 수녀님의 “병상일기”와 정호승시인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가 수록되었다.
수록된 작품 순서는 아래와 같다.
치유 II Healing Moment II for String Ensemble
치유 IV Healing Moment IV for 10 Violoncellos
치유 I Healing Moment I for Clarinet Trio
치유 III Heaing Moment III for Percussion Trio
미소 III Miso III for Solo Violin
병상일기 (이해인 詩) for Baritone and Piano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詩) for Baritone and Piano
이혜성은 평화주의자일까?
음반평: 전인평 (중앙대학교 작곡과 교수) 2007. 3. 5. 낭만음악 게재
이혜성 작곡집 "미소"
muzoo 레코드, MZD-1042, 2007.
국립극장의 행사에 참여하였다가 달오름극장 로비에서 음반 한 장을 받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씨디를 보내오지만 씨디를 받으면 꼭 들어본다.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이고 나에게 전해 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이다. 더구나 씨디를 건네 주며 작곡자가 하는 말이 내 글을 읽었다고 했다. 작곡가 중에서 내 글을 읽었다고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소설가나 시인을 만나면 흔히 내 글을 읽었다고 하여 ‘누가 소개라도 하던가요?’ 하며 묻곤 했었다.
사실 나는 서양 현대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다. 대체로 현대음악은 씨디를 받으면 한 번 듣는 것이 마지막이다. 두 번 다시 들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음량을 과장하여 보일러 터지는 소리를 자주 내고 과도한 불협화음으로 사람을 너무 긴장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매일의 생활이 긴장의 연속이엉서 좀 쉬어야겠는데 음악까지 긴장시키니 정이 가지 않는다. 아니면 한 곡이 긴장시켰으면 다음 곡에서는 좀 쉬어야겠는데 계속 자극을 준다. 음악을 다 듣고 나면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이혜성의 음악은 달랐다.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그 흔해빠진 크레센도나 포르티씨모도 극히 절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간혹 불협화음이 나오지만 곧 바람결에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자연스레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혜성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5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섬 우부드에서 들었던 가믈란 음악이 떠올랐다. 발리 사람들은 일견 게을러 보인다. 더운 날씨라서 아침 일찍 일어난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일을 하고는 1시면 온 가족이 모두 집에 돌아와 밥을 해 먹는다. 그리고 낮잠을 한 숨 잔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 24시간 편의점을 하는 것을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3시에 문을 닫아도 잘도 먹고 사는데 24시간 일을 하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을까?
낮잠을 한 숨 자고 일어나서는 가벼운 일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는 마을의 사원으로 모인다. 그리고 신을 위하여 음악을 연주 한다. 사원에는 가믈란 악기 세트가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나 먼저 오는 사람이 악기 연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뒤에 오는 사람이 연주에 참여한다. 한참을 연주하다가 악기를 서로 바꾸어 연주한다. 누구나 어떤 악기던지 연주하는 것이어서 특별히 전공이 없다. 가믈란 악기가 사원 공터 한 편에 있기 때문에 가운데는 비어 있다. 마을의 젊은 아가씨들이 중앙에 들어가 춤을 춘다.
이 악기 연주자나 춤꾼은 전문가가 아니다. 그냥 마을 사람들이다. 음악을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음악을 배워 자기의 실력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오른다거나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아니다.
가믈란 연주는 서양음악과 매우 달라서 독주자가 없다. 마치 우리나라 농악과 흡사하다. 농악의 꽹과리 연주자가 자기 기량을 자랑하려고 꽹과리 독주회나 징 독주회를 개최한다면 모두를 웃을 것이다. 꽹과리나 징은 혼자서 연주는커녕 연습도 할 수 없다. 꽹과리는 징과 장구가 어울려야 비로서 연습도 할 수 있다. 이처럼 가믈란 연주자는 혼자서는 연습도 불편하다. 보낭 연주자나 감방 연주자는 공이 울려주어야 절주를 파악하고 연주를 진행할 수 있다. 혼자서는 밋밋하여 도무지 연습도 하기 어렵다. 이 음악은 이렇게 여럿이 연주하기 때문에 연주하는 동안에 남의 음악을 잘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남이 연주하는 음악과 조화시킨다. 이러한 조화를 발리사람들은 이칼라스(ikalas)라고 하는데 발리 사람들의 중요한 생활 덕목이다. 가믈란 음악은 연주 목적이 신에게 자기 정성을 보이는 것이어서 과장이나 가식이 없다. 그냥 자기 할 수 있는 만큼 자기가 아는 만큼 음악을 즐기며 연주한다. 내가 음악을 즐기면 곧 신도 즐긴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굉장한 기교를 자랑하려고 연습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냥 즐긴다.
이혜성의 음악을 들으면서 무슨 제목이기에 이런 분위기일까하는 호기심에 음악의 제목을 읽어보았다. <죽란지사>, <비움>, <산사>, <미소>---. 현대음악에서 이처럼 음악을 들으며 제목을 보며 ‘과연 그렇군′하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이 음악은 쉽게 제목을 수긍하였다. <죽란지사>는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1762-1836)과 관계가 있는 동인모임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일 년 중 살구꽃이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참외가 익을 때, 연꽃이 필 때, 국화가 필 때, 큰 눈이 올 때, 매화가 필 때 이렇게 일곱 차례의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이혜성은 화사한 산조가야고나 현란한 25현을 사용하지 않고 투박한 정악용 가야고 법금을 사용하고 있다. 국악기를 참으로 적절하게 사용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비움>의 해설을 보니, “살면서 늘 채우기에 급급한 욕심을 버리는 자세로 비우고 또 비워내는---” 마치 고즈넉한 산사에서 만난 스님과의 대화를 연상하게 한다. <산사>는 마림바 4중주곡이다. “새벽의 산사, 동자들의 천진한 산사, 명상 속의 산사, 그리고 번뇌에서 해탈까지---”
<비움> <산사> 등의 우리말 제목을 쓰면서도 해설에서 영어로 “an emptiness" ""mountain temple" 등을 적어 둔 것도 호감이 간다. 어떤 음악인은 영어 독어 불어 등을 마구잡이로 적어놓고 한글을 적지 않아 청중을 주눅들게 하기도 한다. 이혜성은 해설에서도 듣는 이를 위하여 친절하게 배려를 하고 있다.
나는 발리섬 우부드에서 열흘간 지내면서 시장에서 조차 싸우는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이들이 믿는 힌두교는 인도의 힌두교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한다. 이들의 음악이 이처럼 평화스러운 것은 당장의 현세보다는 다음 삶 즉 내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혜성의 음악은 아주 낮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혹여나 내 욕심 때문에 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가짐 같다. 그녀의 음악은 자신을 내세우려 노력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
는다. 늘 다니는 찻집에서 집에서 입던 평상복으로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그의 경력을 읽어 보았다. 현재는 경원대학교 작곡과 교수이고 쌍둥이 동생 이예찬은 바이올리니스트이며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라고 한다. ‘쌍둥이 음악 공부에 부모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겠군!’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간다. 1990년에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에는 베를린 국제 작곡기타 콩쿠르 1등을 하고, 1990년에는 오스트리아 테오드로 퀘르너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2000년에는 ISCM 룩셈부르크 세계 음악제에서 작품 <고요>가 입선되고, 2002년에는 <비움>으로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고 적고 있다. 유럽에서 공부를 하였으면서도 이렇게 동양적 정서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계기였을까? 이것은 그냥 책이나 읽어서 느낀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심성 밑바닥에 깔려있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는 마음가짐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가을의 노래>는 차라리 넣지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 오면 산사에서 내려와 시끄런 도시로 나온 기분이다. 옥의 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다른 씨디를 만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생각은 나만이 갖는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음반을 듣고 다음에 다시 듣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음반 레이블에 느낌표를 적어 둔다. 느낌표 3개는 아주 좋은 음악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혜성의 곱고 화사한 음반 레이블 아래 빈 곳에 <아주 좋은 음악!!!> 이렇게 적어 두었다. 그리고 마음에 적어 두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중국 태산에서 비싸게 구해온 철관음 차를 마시며 다시 들어봐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2007.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