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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그리고 체제공과 홍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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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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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그리고 채제공과 홍국영


역사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거울입니다. 요즘 한창 <이산>이라는 제목으로 영조 말기에서 정조가 등극하려는 무렵의 사극이 TV에 방영되면서 채제공(1720-1799)과 홍국영(1748-1781)의 삶과 인물됨을 살펴보려는 생각이 듭니다. 풍운아의 성격으로 살다가 34세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패망하고 마는 홍국영과, 80세의 장수를 누리며 모든 벼슬을 다 역임하고 영의정이라는 최고의 지위까지 오른 채제공의 삶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역사의 거울이 됩니다.

24세인 177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의 설서(說書)가 되면서 세손이던 이산과 가까워진 홍국영. 그리고 1743년 24세로 문과에 급제하여 영조 말년에 병조 예조 호조판서 등의 고관을 다 지내고 1772년인 53세에 세손 의 우빈객(右賓客)이 되어 죽음의 위협에 처한 이산을 홍국영과 손을 잡고 함께 보호해준 번암대감 채제공. 정조로 보면 가장 가깝고 가장 신뢰하던 충직한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품과 학문의 깊이 및 내공의 차이로 조선후기 세도정치의 시발자라는 오명과 함께 일찍 패망하여 일개 권신의 입장에 그치고 말았던 홍국영에 비교하여, 조선후기 마지막 남인계의 정승으로 가장 혁혁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명재상으로 천추에 이름을 전하는 채제공의 역사적 평가는 그렇게 차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산은 「번옹유사(樊翁遺事)」라는 글을 통하여 채제공에 관한 정사(正史)의 기록에서 빠진 탁월하고 뛰어난 정치지도자로서, 당대 문한(文翰)의 총책임자로서 빈틈없고 정확했던 처신을 아름답고 유려하게 기술하였습니다. 정치지도자로서는 일생에 가장 존숭했던 번옹. 다산은 같은 조정에서 그런 위인과 함께 벼슬했던 것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1776년 3월, 홍국영은 29세, 채제공은 67세의 노인. 마침내 영조가 붕어하고 간난신고를 겪은 정조가 보위에 오르고 홍국영 세도정치가 시작됩니다. 정조는 등극하자 바로 홍국영을 승지, 도승지에 임명하여 왕명출납의 전권을 그에게 넘겼고, 요즘 같으면 임금 경호실을 새로 신설하여 경호실장도 겸하게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홍국영의 천하가 되었습니다. 인사청탁이 쇄도하고 뇌물이 쏟아져 들어가던 곳이 홍국영의 집이었습니다. 궁중을 완전히 장악할 욕심으로 1778년에는 자신의 15세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던 노론 벽파의 수괴들을 대부분 처단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던 사람이 홍국영이었습니다.

권력이 홍국영에게 집중되자 세도정치가 형성되며 임금도 눈에 보이지 않던 홍국영은 못할 짓이 없이 오만방자하게 처신하면서 독재정치를 감행합니다. 유일하게 이에 맞서 정치의 정도를 주장했던 사람이 바로 채제공이었습니다. 그런데다 벽파의 공격 때문에 채제공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더 불행한 일은, 1780년 강릉에 ‘위리안치’되어 있다가 홍국영이 죽자 오히려 홍국영과 �:隙� 두터웠다는 이유 때문에 더 공격을 받아 8년간이나 서울 근교에서 은거생활을 했습니다. 1788년 69세에 정조의 특명으로 우의정에 오른 채제공은 곧 좌의정에 올라 3년간 독상(獨相: 혼자서 정승을 맡음)으로 있으면서 정조치세의 모든 개혁정치를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뒤에 영의정에 올랐으나 사도세자 복권을 주장하다가 또 실각되고 맙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정조의 가장 든든한 충신이었고, 정도의 정치를 했던 채제공은 사후에도 당파싸움으로 오랫동안 탈관삭직도 되었으나, 문숙(文肅)이라는 시호가 내렸고 완전히 복권되어 조선 후기의 최고의 학자, 정치가로 만인의 칭송을 받는 위치에 자리잡았습니다.

역사는 그렇습니다. 권력에 도취되어 절제를 모르고 날뛰는 세도가들과 노숙하고 완숙하여 순리와 정도를 따르는 정치가와의 차이가 그렇게 분명합니다. 그런 역사를 요즘 사람들도 기억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다산의 「번옹유사」라는 글을 한번쯤 읽어보기도 권합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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