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곡의 활성화(25년전 글) > Artcle

본문 바로가기

창작곡의 활성화(25년전 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0:16

본문

제6회 대한민국작곡상 (1978년)

창작곡의 활성화

한상우 / 음악평론가



대한민국 작곡상을 제정했을 때 우리 음악계는 창작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어떤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나타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나라의 음악문화는 궁극적으로 창작예술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며 우리의 민족혼이 스며있는 감동적 예술품은 역시 우리의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작곡상을 제정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그냥 작곡가 한사람을 뽑아 상을 주자는 뜻이 아니라 온 국민이 감동하고 나가서는 전 세계에 한국적 내음이 승화된 우리의 예술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을 발굴하고 또 그러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어 보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 양악이 수입된 지 어언 백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서양음악이 필연적으로 경험했던 소위 민족주의 음악이 우리의 창작음악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이 고전이나 초기 낭만에서 껑충 뛰어 현대로 넘어옴으로써 창작음악이 문화적 기능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시벨리우스의 교향시「핀란디아」가 핀랜드 국민은 물론이요, 이를 듣는 모든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뿌듯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음악 가운데는 아직 그러한 음악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해방된 지 40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무슨 일이 있으면 안익태작곡 한국환상곡만 연주하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반문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모든 이에게 감동을 전하고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내음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뾰족한 수가 없음을 자언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답답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보기 위해 대한민국작곡상은 제정되었고 그래서 지난 몇 년간을 운영해 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작곡상은 모든 기성작곡가들을 망라한 모름지기 최고권위의 창작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콩쿨형식에서 탈피, 일년동안에 작곡 발표되었던 모든 창작품들을 대상으로 추천을 받아 수상작을 뽑는 형태를 취해왔다. 하지만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해를 거듭할수록 추천작품의 수도 줄어들 뿐아니라 수상작을 고르기도 어려우리만큼 바람직한 창작품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동안 수상된 작품들이 거의 대부분 현대적 기법의 작품들로 편중되어있어 일부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일종의 현대작곡상으로서의 구실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러한 문제들을 타결해 보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작곡상이 이미 만들어져 발표 연주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방법 속에서 일차적 책임은 창작자들 자신에게 있다고 해도 잘못된 점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작곡가들은 자신의 예술작업을 통해 어떠한 작품을 만들건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며 또 상을 받기 위해 작품을 쓸 수 없음은 당연한 처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 볼 때 한나라의 음악문화의 기능을 이끌어갈 중추적인 역할을 창작인이 져야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보다 대중적 감동이 깊이 담겨있는 작품을 공급해야한다는 사실도 인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재의 창작빈곤은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작곡상의 대상을 감소시키고 있음은 물론이요, 본래의 목적과는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를 운영해 가는 과정에서 좀더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아울러 느끼게 되는데 음악에 있어서 창작품이란 반드시 재현행위 즉 연주를 통해서만 전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상작 연주회를 반드시 열고 수상작 연주회에서 시상식을 갖는 등 음악행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어야 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연주가 되지 않는 작품상이라든가 연주를 주선해 주지 않는 작품 발굴은 전혀 의미가 없을 뿐아니라 더군다나 일반음악애호가들에게는 무익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비단 작곡상뿐만 아니라 현재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모든 음악 콩쿨은 악단의 등용문이라는 저마다의 주장을 펴기는 하지만 콩쿨에서 입선한 연주인들로 하여금 연주할 수 있는 길을 알선해 주고 있지 않음으로써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하고 있고 그래서 세속적인 목적을 가진 콩쿨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행사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데 있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음악예술이 갖는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음악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가 그러하지만 정신문화에 속해있는 예술적인 행사에 있어서는 예술적인 의미가 부각되고 그 값어치가 충분히 인정되는 상황 속에서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이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음악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고 그 결과 근래에 와서 대한민국작곡상을 서울음악제로 넘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어 놓는가하면 또 타당성이 인정되기도 한다. 한국음악협회가 주관하고 있는 서울음악제는 창작음악만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모름지기 창작을 위한 유일한 음악제이며 지난 10여년간 서울음악제를 통해서 많은 작품들이 선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창작음악에 관계된 모든 행사를 한군데로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의 생각은 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서울 음악제는 음악제에서 연주된 작품에 한해 수상작을 고르게 되기 때문에 범위가 좁아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범국가적 의미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미 제정된 상을 가지고 갈 것이 아니라 서울음악제가 새로이 또하나의 상을 신설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대한민국작곡상 운영위원회가 못마땅하다면 서울음악제 집행위원회도 못마땅할 수 있다는 가설이 설립될 수 있을진대 상을 통합해서 더 큰상이 된다면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서울음악제의 이관이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있는 것이지 어느 기관이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음악계의 모든 행사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서로의 힘을 합하지 않기 때문이며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신뢰의 마음을 갖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는 비단 작곡상에만 기인된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음악제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어쨌든 정부는 음악제와 음악인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애호가들을 위해 대한민국 음악제와 대한민국작곡상을 제정했고 이름도 국호인 대한민국을 사용함으로써 모름지기 이 나라에서 가장 크고 권위있는 행사로 키워나가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볼 때 아쉬웠던 점들 가운데 음악계, 혹은 음악인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없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음악계의 행사는 뭐니뭐니해도 먼저 음악인들이 합심단결해서 이를 키워 나가려는 의지와 정열을 보여 주어야 함에도 그렇지가 못했음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할 때 대한민국작곡상의 발전은 우선 창작계와 이에 관심있는 이들이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며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반드시 수상기념 연주를 행하는 등 보완함으로써 가능하리라 본다. 좀더 욕심을 낸다면 미술대전 수상자에게 파리 여행의 기회를 주는 것과 같이 작곡상 대상수상자에게는 1년 혹은 2년간의 유학기회를 주는 뒷받침이 가능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작곡상의 권위는 더욱 높아지리라 믿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이 일에 관심을 갖는 일이 중요하며 계속해서 보완하는 작업을 가질 때 대한민국작곡상은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Copyrights 2018 ⓒ Lee Hae-Sung. All rights reserved. 이혜성교수  goyoh6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