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혜성의 음악세계와 미소'- 원유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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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이혜성의 음악세계와 미소'- 원유선 글
독주곡: 사고와 신념의 상想 한국창작음악-비평과 해석사이 003 , 음악미학연구회 엮음
Hae-Sung Lee Miso III for Solo Violin, 2008
이혜성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미소 III>
글 ̇원유선
이혜성(1961- )은 소리와 생에 대한 강인한 집념을 통해 내면의 깊은 공명을 이끌어 내는 작곡가이다. 이화 여대 작곡과에서 백병동을 사사한 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하였다. 베를린 국제 작곡 기타콩쿠르 1위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테오도르 퀘르너(Theodor Körner) 대통령상(1990)과 제21회 대한민국 작곡상 (2002)을 수상하였다. 1998년부터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배우기 쉬운 이혜성의 선법대위』(2001)를 출간하고 <이혜성 in Green>, <미소>, <치유>, <위로>로 이어지는 네 개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치유> 시리즈(2009-2014)와 <미소> 시리즈(2005-2008)를 비롯해, <깨어있음>(1990), <마루타>(2002), <비움>(2005), <라온>(2015), <화가 이중섭>(2019) 등이 있다. 현재는 청중과 여유롭게 호흡 하며 간결함의 미학이 돋보이는 음악을 작곡하는 한편, 동서양의 음악적 범주를 넘나 들며 독자적인 음악세계 를 선보이고 있다.
고통의 경계를 넘어 외부세계와의 연대로
이혜성의 음악세계는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릴 적부터 병치레에 시달린 그는 고등학교 시절 겪은 극심한 질병으로, 오랜 시간 매진한 피아노를 포기하고 작곡으로 선회하게 된 다. 이후 작곡가로서 치열한 삶을 다져 갔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은 늘 이혜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삶의 많은 시간이 질병으로 점철되었기에, 자연스레 고통은 그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고통이란 특유의 창작의지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 키워드로 작용한다. 건강상의 문제는 육체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절박한 ‘생의 지’(Wille zum Leben)를 촉발했으며, 찰나에 몰입할 수 있는 내성을 길러주었다. 아울러 고통 은 그가 평생 예술가로서 천착해 온 주제와 사상, 음악적 전개방식과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작품을 쓰기 위한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주어진 시간을 아껴 가며 창작 을 했고, 통증으로 마음까지 굴복당하지 않도록 마음단련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작곡가의 언급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고통에 대한 승화와 달관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고통과 회복의 변증법에서 탄생한 소리들
이혜성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단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치유> 시리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치유>는 삶에서 경험하는 영육간의 고통을 음악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약 5년에 걸쳐 작곡된 작품이다. 총 11곡의 연작으로 되어 있으며, 이 곡을 통해 이 혜성은 ‘치유의 작곡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치유란 한때 불었던 힐링 열 풍처럼 단지 정신적 안락함이나 명상을 위한 음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치유의 이면에 사실 상 작곡가가 겪은 고통과 회복의 시간이 농밀하게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치유> 에는 그가 고통과 회복의 시간을 왕복하며 획득한 삶의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입자 속에 유사한 입자가 포함된 프랙탈처럼 <치유> 안에 그동안 선보인 음악적 경향이 종합적으로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응을 토대로 자연과 내면에 대한 사랑, 역사의식 등이 깊숙이 침전되어 있다. 예컨대 <치 유 4>(2010)에 자연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다면, <치유 10>(2013)에는 작곡가의 각별한 신앙 심과 종교적 치유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한국전쟁의 전사자를 애도하는 <치유 3>(2010)과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했던 화가 이중섭의 삶을 다룬 <치유 9>(2013)에서는 작곡가가 젊은 시 절부터 견지해온 역사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단지 표제적 측면에서만이 아니 라 음악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소리와 여백이 교차되며 고즈넉한 사유의 공간을 마련한다거나, 동종악기와 함께 반복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 이다. <치유>가 개인의 안락이 아닌, 타인과 자연, 역사의 차원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다. 이혜성의 음악은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 1946-)가 언급 했던 “고통 받는 몸의 경계를 넘어 외부와 공유할 수 있는 세계로 이동해 나가는 인간 본연의 능력”을 보여준다.
악기 하나 짊어지고 떠나는 고행의 길
이혜성은 유독 한 악기를 위한 작품을 많이 쓴 작곡가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까지 작곡한 상당수 작품이 독주악기나 동종악기를 위한 음악일 정도로, 그는 20대부터 현재까지 국악기 와 서양악기를 넘나 들며 한 종류의 악기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고 새로운 기법을 개척해 왔다. 그렇다면 이혜성이 독주악기나 동종악기 앙상블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악 기에 대한 연구를 전제로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며, 악기의 소리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작업실에 악기를 가져다 놓고 직접 소리를 내보는가 하면, 연주자에게 수없이 질문하며 악기 고유의 음향을 완벽히 체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악기에 내재된 소리를 끊임없이 파고들며 고난을 자처하기도 한다. 예컨대 현악기의 개방현과 개방현의 하모닉스 소리가 교차되며 울리는 엔젤릭 트레몰로(Angelic Tremolo)나 E음과 F음을 두 줄 가 운데로 튕겨 만드는 마파 피치카토(MaPa Pizzicato)는 집요한 소리탐구의 결실이다. 고행과 단련을 통해 얻어 낸 소리들은 동일한 여러 겹의 실타래가 바람에 흔들리듯 같은 악기 여러 대로 연주되며 첨예한 긴장감을 생성해 낸다. 화려한 소리보다 참된 소리를 끝없이 길어 올 리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른바 ‘소리 구도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미소 III>
(Miso III for Solo Violin, 2008)
아르페지오가 빚어내는 생명의 에너지
<미소 III>은 평소 악기 고유의 소리에 천착해 온 작곡가가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이채로운 울림에 집중하여 작곡한 작품이다. 2008년 이예찬 바이올린 독주회에서 초연된 이 곡은 2005년부터 발표해 온 미소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바이올린의 특수주법에 대한 공감을 목 적으로 발표되었다. 창작과정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예찬의 도움을 받아 수십 가지의 아르페지오를 무대에서 직접 실험하는 등 연주자와의 심도 있는 협업을 통해 고유한 울림을 만 들어 냈다. <미소 III>이 겨울의 느티나무 가지라면 <치유 I>은 여름의 느티나무 가지와도 같다”고 하는 작곡가의 비유처럼, 이 곡의 소리 구성은 훗날 작곡된 <치유>의 모태가 되며 이혜성의 음악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독주악기를 꾸준히 탐구해 온 그는 특히 현악기를 위한 새로운 주법의 개발에 박차를 가 해 왔다. 하지만 이 곡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기악적 구체음악처럼 몸을 사용해 현을 움직이거나, 살바토레 샤리노(Salvatore Sciarrino, 1947- )의 극단적 하모닉스처럼 발견되지 않은 음향적 틈새를 마구 헤집어 놓지 않는다. 말초신경을 파고드는 초고음 이나 파괴적 음색 대신 이혜성은 ‘아르페지오’ 하나로 약 10분간 진검승부를 펼쳐 나간다.
<미소 III>은 아르페지오를 집중적으로 구사하는 부분과 몇 개의 선율적 단편을 길게 지 속시키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D음으로 호흡을 고르는 것으로 출발한 음악은 D-A-F 세 개의 음을 축으로 삼아 능수능란한 아르페지오를 선보인다. 여기서 작품을 지배하는 아르페지오가 고전적인 연주법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곡에서 새로움이란 결코 과거의 파괴가 아닌,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을 쌓아 나가는 것이다. 아르페지오를 강조 하기 위해 사용된 술 타스토(Sul tasto)나 리코체(Richochet), 하모닉스(Harmonics), 비브라토 (Vibrato)는 과거부터 바이올린 작품에 활용된 기법이다. 작품은 고전적 기법에 뿌리를 두면서도 기존의 것을 조금씩 비틀어 새로운 빛깔을 입혀 놓았다. 예컨대 아르페지오 끝 부분만 비브라토로 처리하거나, 아르페지오의 구성음 중 개방현의 음을 강조하여 탄력 있는 울림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울림이 큰 아르페지오와 논 아르페지오(non arpeggio)를 교차 시켜 풍부한 대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모든 변형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에 청자는 일체의 위화감 없이 아르페지오가 발 산하는 색채와 흐름에 몰입할 수 있다. 빛이 투명한 프리즘을 통과해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굴절되듯이, 동일한 아르페지오 음형이 다른 테크닉으로 반복되면서 변화무쌍한 음색을 발 산하는 것이다. 반복을 토대로 하지만, 하나하나 질적인 개성과 차이를 갖는 아르페지오는 고전과 현대의 미묘한 경계선에서 파르르 진동한다.
한편, 아르페지오의 운동이 소강된 후 몇 개의 음이 느리게 지속되는 부분 역시 작품의 또 다른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 )의 <프라트레스> (Fratres)와도 일견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프라트레스>가 아르페지오가 부재하는 빈 공간을 다른 악기의 유려한 화성으로 채웠다면, <미소 III>은 아르페지오가 쉴 때도 여백 을 오롯이 드러낸 채 바이올린이 홀로 가쁜 호흡을 이어 나가며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여기서 단연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이올린이 지닌 날 것의 음색이다. 비브라토로 소리를 장식 하는 대신 개방현을 활용하고 잔향이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기에, 연주자의 숨과 호흡 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인생을 달관한 자가 풍기는 채취처럼 앙상하고 창백한 음향으로 깊은 여운을 내뿜는 부분이다.
이처럼 채움과 비움, 울림과 여백의 교차는 화려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궁극적 본질이 결코 악기의 비르투오소한 측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르페지오 의 약동하는 움직임이 단단한 지층을 뚫고 발아하는 싹을 연상시킨다면, 음악적 운동이 느려 진 채 앙상한 음향이 드러나는 부분은 생의 자연스러운 소멸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계속하여 교차되면서 생성과 소멸, 운동과 쉼을 거듭하며 순환하는 생명의 원리를 보 여주고 있다. 청중은 단지 화려한 기교만이 아닌, 어둠을 뚫고 발산하며 이지러지는 끈질긴 음악적 생명력에 경이로워하며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인터뷰 작곡가 이혜성과의 대화 2020년 7월 26일
원유선: 선생님의 작품세계에서 독주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바이올린, 마림바, 국악기를 비롯해 동종악기를 위한 작품을 굉장히 많이 작곡해 왔는데요. 음악적 효과를 쉽게 낼 수 있는 편성을 떠나 독주곡에 천착해 온 이유가 무엇인지요? -
이혜성: 독주악기는혼자서모든것을다표현해야 하기에 어느 작곡가에게도 부담이지 요. 동종악기를 위한 작품의 경우 현악 오케스트라보다 당연히 바이올린 10대나 첼로 10대 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작 품을 완성한 후 한동안 독주곡이나 동종악기의편성을 쓰고싶지 않을만큼 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었지요. 그럼에도 독주악기나 동종악기 앙상블에 대한 음악적 시도를 멈추지않은이유는제안에내재된엄청난도전 정신 때문인가 봅니다. 곡을 마무리한 후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못다 한 시도 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지요. 극한을 뛰어 넘고 싶은 용감함이라고 할까요? 가령 베이스 앙상블단체 DaBass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치유 5>(2011)는 더블베이스 10중주의 편성이었는데, 끝날 즈음에는 시간을 더 주어도 못 쓸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심정이었지 요. 그런데도 이후에 <치유 7>(2012)과 <치유 10>에서 10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두 편이나 더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치유 7>에 서 아쉽게 생각했던 소리의 결합을 <치유 10> 에서 구현하고 싶은 의지가 불타올랐거든요.
원유선: 독주곡만큼이나 악기 음향에 대해 치열 하게 탐구해 왔다는 것도 특징적입니다. 특히 마 파 피치카토나 엔젤릭 트레몰로 같은 다채로운 바이올린주법을개척하게된배경중하나로동 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예찬 선생님과의 협업과 정을꼽을수있을것같습니다.소리를확인하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이혜성: 작품의 구상부터 특정 악기의 주법 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작곡 가인 제 기본 입장입니다. 바이올린과 플루트 처럼비슷한음역의악기라도서로다른음색 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싶었죠.고맙게도쌍둥이동생이있어돈 독한 믿음을 전제로 바이올린 연주기법에 대해 늘 편하게 이야기하고 상의할 수 있었습니 다. 작곡가로서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은 나를 위해 일부러 연주홀에서 소리를 내어 음원을 보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연주기법을 만들고, 연주 가능하지만 충분한 울림이 적어서 사용 하지 않는 소리의 조합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협업의과정속에서작곡가와연주가의기 싸움도 치열했습니다. 연주법이 어려운 경우 연주자의 입장에서 혹독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고, 작곡가의 입장에서 수긍할 수 없을 때는 며칠씩연락을안하고서로고민을거듭하기 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는 더없이 귀중 한 시간이 되었고, 바이올린 협주곡 <새야새 야>(2003)와 현악 오케스트라, 7개의 독주 바이올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지요.
원유선: 그간 <깨어있음>(1990)이나 <마루타> (2002), <탈>(1994), <상한 영혼을 위하여>(1995), 처럼 역사의식을 드러낸 작품과 <허난설헌>(2002), <죽란시사>(2006), <어여차>(2017), <화가 이중 섭>(2019)처럼 과거 인물을 조명한 작품 등에서 한국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본인을 한국작곡가로서 정의할 수 있는특징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이혜성: 평소 한국 작곡가라는 긍지와 사명 감을늘갖고있습니다.특히일제강점기와 우리 역사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강한 편입니다. 모 친께서5살때우리춤을가르치는학원을보 내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장구 장단, 칼춤, 작은북을 두드리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 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인데, 생각해 보니 어릴 때의 경험이 30대부터 시작된 국악 에대한열정을촉발하는계기중하나였던것 같습니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상반되는 문화 를 함께 작품속에어우를수있어늘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원유선: 30대 후반부터 <고요 2>(1999), <고즙>(2000), <어여차>(2009),<죽란시사>를 비롯해 국악기로 된 작품을 많이 작곡한 것이 눈에 띕니다.유학이후 서양음악의 어법을 정교하게 구축해 오다가, 국 악기를 위한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 이혜성: 모교인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있어 자주 국악기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 학 시절에는 큰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기 전부터 귀국하면 본격적으로 국악 기전반에대한연구와함께가야금을배우고 싶다는열망을 가졌지요.그때 황병기선생님을 만나 답답했던 한국작곡가로서의 정체 성을 풀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후 국 악작곡가 이해식 선생님의 권유로 장구를 따로 배웠고, 피리, 아쟁을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악에 제2외국어 같은 낯설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편하면서도 언제나 흥미롭고 즐겁습니다.
원유선: 2000년대 이후 뚜렷하게 변화된 음악적 경향으로 조성의 사용과 반복을 들 수 있을것같습니다. 그간 많은 작곡가들이 반복을 중요한 음악적 도구로 사용해 왔는데요. 선생님의 작품세계에서 반복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 이혜성: 30대에는 일부러 반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그다음작품에는앞의작품과는완전히다른 구상을 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또 마음을 다해 작업하기보다는 머리로만 작업하는 논리와 이론이 앞선 완벽한 작품에 정진중 이었어요. ‘꼭 이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 듦을 자처했던 것이죠. 그 때 에스토니아 작곡 가 아르보 패르트는 저에게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패 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tintinnabular(종의 울림)”속에서 느껴지는 소리의 간결함과 깊고 깊은울림의 세계는 저에게 큰 경종을울렸습 니다. 당시 작품세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성찰 하면서 불협화음에 대한 입장도 급격히 달라 졌고, 간결함과 단순함처럼 꼭 써야할 음만 쓰고싶은편안함속에서 그렇게고 되고 낯선 길을 지나 이제야 작곡하는마음이조금 충만해졌습니다
원유선: 지난 20년간 음악적 교육환경이 급격히 바뀌어 왔습니다. 피날레 같은 작곡 소프트웨어 를 비롯해 유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처럼 원하는 음원을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속에서, 학생들이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기술로 변화된 음악적 환경에 대한 생각과, 교육자로서 작곡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 이혜성: 올해는 코로나19로 학생들의 작곡환 경과 속도의 변화가 더욱 컸고, 가르치는 교육 자입장에서는사실 그 속도에 계속놀라워하 는 중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학생들에게 작곡을 가르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빠른 스피드까지 함께하는 컴퓨터를 사용한 작곡을 테크놀로지의 속도 변화 만큼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상대 적으로 느리게 작곡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제 는 더 이상 ‘소리상상’하라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되었지요.가끔은 작곡이 아닌 피날레 테크닉을가르치고 있을 때가 있어서 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저 ‘컴퓨터를 통한 소리라도 잘 듣는것’을 잊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어쩌면 이런 당부조차도AI가 대신 할 날이 곧 도래하겠지요.
원유선: 3년 전 인터뷰에서 ‘현재는 작곡가로서 치열하게 살아 왔던 시간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가는 시기’라고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현재 어떤 작품들을 작업하고 계시는지, 또한 향후 펼치고 싶은 음악세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혜성: 돌아보면 제가 쓰는 언어중에‘ 치열’ 하다는말을 자주 썼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 과연 한 순간도 치열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 가?’ 자문하게 되지요. 최근에는 <위로>와 <기 도>를 주제로 어느새 다시 연작을 쓰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악기로 된 작품을쓰고싶은 열정은늘식지않아서 좀 그 열이식으면편할텐데 생각하기도합니다.가끔작업시작 전에 여유가 있을 때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의 가곡 <내일>(Morgen)을 들으며, 삶을 치열하게 산 어느 노부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책임질 일과 할 일이 많아서 어렵겠지만 조만간 조용하고 행복한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독주곡: 사고와 신념의 상想 한국창작음악-비평과 해석사이 003 , 음악미학연구회 엮음
Hae-Sung Lee Miso III for Solo Violin, 2008
이혜성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미소 III>
글 ̇원유선
이혜성(1961- )은 소리와 생에 대한 강인한 집념을 통해 내면의 깊은 공명을 이끌어 내는 작곡가이다. 이화 여대 작곡과에서 백병동을 사사한 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하였다. 베를린 국제 작곡 기타콩쿠르 1위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테오도르 퀘르너(Theodor Körner) 대통령상(1990)과 제21회 대한민국 작곡상 (2002)을 수상하였다. 1998년부터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배우기 쉬운 이혜성의 선법대위』(2001)를 출간하고 <이혜성 in Green>, <미소>, <치유>, <위로>로 이어지는 네 개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치유> 시리즈(2009-2014)와 <미소> 시리즈(2005-2008)를 비롯해, <깨어있음>(1990), <마루타>(2002), <비움>(2005), <라온>(2015), <화가 이중섭>(2019) 등이 있다. 현재는 청중과 여유롭게 호흡 하며 간결함의 미학이 돋보이는 음악을 작곡하는 한편, 동서양의 음악적 범주를 넘나 들며 독자적인 음악세계 를 선보이고 있다.
고통의 경계를 넘어 외부세계와의 연대로
이혜성의 음악세계는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릴 적부터 병치레에 시달린 그는 고등학교 시절 겪은 극심한 질병으로, 오랜 시간 매진한 피아노를 포기하고 작곡으로 선회하게 된 다. 이후 작곡가로서 치열한 삶을 다져 갔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은 늘 이혜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삶의 많은 시간이 질병으로 점철되었기에, 자연스레 고통은 그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고통이란 특유의 창작의지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 키워드로 작용한다. 건강상의 문제는 육체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절박한 ‘생의 지’(Wille zum Leben)를 촉발했으며, 찰나에 몰입할 수 있는 내성을 길러주었다. 아울러 고통 은 그가 평생 예술가로서 천착해 온 주제와 사상, 음악적 전개방식과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작품을 쓰기 위한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주어진 시간을 아껴 가며 창작 을 했고, 통증으로 마음까지 굴복당하지 않도록 마음단련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작곡가의 언급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고통에 대한 승화와 달관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고통과 회복의 변증법에서 탄생한 소리들
이혜성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단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치유> 시리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치유>는 삶에서 경험하는 영육간의 고통을 음악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약 5년에 걸쳐 작곡된 작품이다. 총 11곡의 연작으로 되어 있으며, 이 곡을 통해 이 혜성은 ‘치유의 작곡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치유란 한때 불었던 힐링 열 풍처럼 단지 정신적 안락함이나 명상을 위한 음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치유의 이면에 사실 상 작곡가가 겪은 고통과 회복의 시간이 농밀하게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치유> 에는 그가 고통과 회복의 시간을 왕복하며 획득한 삶의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입자 속에 유사한 입자가 포함된 프랙탈처럼 <치유> 안에 그동안 선보인 음악적 경향이 종합적으로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응을 토대로 자연과 내면에 대한 사랑, 역사의식 등이 깊숙이 침전되어 있다. 예컨대 <치 유 4>(2010)에 자연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다면, <치유 10>(2013)에는 작곡가의 각별한 신앙 심과 종교적 치유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한국전쟁의 전사자를 애도하는 <치유 3>(2010)과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했던 화가 이중섭의 삶을 다룬 <치유 9>(2013)에서는 작곡가가 젊은 시 절부터 견지해온 역사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단지 표제적 측면에서만이 아니 라 음악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소리와 여백이 교차되며 고즈넉한 사유의 공간을 마련한다거나, 동종악기와 함께 반복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 이다. <치유>가 개인의 안락이 아닌, 타인과 자연, 역사의 차원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다. 이혜성의 음악은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 1946-)가 언급 했던 “고통 받는 몸의 경계를 넘어 외부와 공유할 수 있는 세계로 이동해 나가는 인간 본연의 능력”을 보여준다.
악기 하나 짊어지고 떠나는 고행의 길
이혜성은 유독 한 악기를 위한 작품을 많이 쓴 작곡가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까지 작곡한 상당수 작품이 독주악기나 동종악기를 위한 음악일 정도로, 그는 20대부터 현재까지 국악기 와 서양악기를 넘나 들며 한 종류의 악기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고 새로운 기법을 개척해 왔다. 그렇다면 이혜성이 독주악기나 동종악기 앙상블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악 기에 대한 연구를 전제로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며, 악기의 소리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작업실에 악기를 가져다 놓고 직접 소리를 내보는가 하면, 연주자에게 수없이 질문하며 악기 고유의 음향을 완벽히 체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악기에 내재된 소리를 끊임없이 파고들며 고난을 자처하기도 한다. 예컨대 현악기의 개방현과 개방현의 하모닉스 소리가 교차되며 울리는 엔젤릭 트레몰로(Angelic Tremolo)나 E음과 F음을 두 줄 가 운데로 튕겨 만드는 마파 피치카토(MaPa Pizzicato)는 집요한 소리탐구의 결실이다. 고행과 단련을 통해 얻어 낸 소리들은 동일한 여러 겹의 실타래가 바람에 흔들리듯 같은 악기 여러 대로 연주되며 첨예한 긴장감을 생성해 낸다. 화려한 소리보다 참된 소리를 끝없이 길어 올 리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른바 ‘소리 구도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미소 III>
(Miso III for Solo Violin, 2008)
아르페지오가 빚어내는 생명의 에너지
<미소 III>은 평소 악기 고유의 소리에 천착해 온 작곡가가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이채로운 울림에 집중하여 작곡한 작품이다. 2008년 이예찬 바이올린 독주회에서 초연된 이 곡은 2005년부터 발표해 온 미소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바이올린의 특수주법에 대한 공감을 목 적으로 발표되었다. 창작과정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예찬의 도움을 받아 수십 가지의 아르페지오를 무대에서 직접 실험하는 등 연주자와의 심도 있는 협업을 통해 고유한 울림을 만 들어 냈다. <미소 III>이 겨울의 느티나무 가지라면 <치유 I>은 여름의 느티나무 가지와도 같다”고 하는 작곡가의 비유처럼, 이 곡의 소리 구성은 훗날 작곡된 <치유>의 모태가 되며 이혜성의 음악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독주악기를 꾸준히 탐구해 온 그는 특히 현악기를 위한 새로운 주법의 개발에 박차를 가 해 왔다. 하지만 이 곡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기악적 구체음악처럼 몸을 사용해 현을 움직이거나, 살바토레 샤리노(Salvatore Sciarrino, 1947- )의 극단적 하모닉스처럼 발견되지 않은 음향적 틈새를 마구 헤집어 놓지 않는다. 말초신경을 파고드는 초고음 이나 파괴적 음색 대신 이혜성은 ‘아르페지오’ 하나로 약 10분간 진검승부를 펼쳐 나간다.
<미소 III>은 아르페지오를 집중적으로 구사하는 부분과 몇 개의 선율적 단편을 길게 지 속시키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D음으로 호흡을 고르는 것으로 출발한 음악은 D-A-F 세 개의 음을 축으로 삼아 능수능란한 아르페지오를 선보인다. 여기서 작품을 지배하는 아르페지오가 고전적인 연주법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곡에서 새로움이란 결코 과거의 파괴가 아닌,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을 쌓아 나가는 것이다. 아르페지오를 강조 하기 위해 사용된 술 타스토(Sul tasto)나 리코체(Richochet), 하모닉스(Harmonics), 비브라토 (Vibrato)는 과거부터 바이올린 작품에 활용된 기법이다. 작품은 고전적 기법에 뿌리를 두면서도 기존의 것을 조금씩 비틀어 새로운 빛깔을 입혀 놓았다. 예컨대 아르페지오 끝 부분만 비브라토로 처리하거나, 아르페지오의 구성음 중 개방현의 음을 강조하여 탄력 있는 울림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울림이 큰 아르페지오와 논 아르페지오(non arpeggio)를 교차 시켜 풍부한 대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모든 변형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에 청자는 일체의 위화감 없이 아르페지오가 발 산하는 색채와 흐름에 몰입할 수 있다. 빛이 투명한 프리즘을 통과해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굴절되듯이, 동일한 아르페지오 음형이 다른 테크닉으로 반복되면서 변화무쌍한 음색을 발 산하는 것이다. 반복을 토대로 하지만, 하나하나 질적인 개성과 차이를 갖는 아르페지오는 고전과 현대의 미묘한 경계선에서 파르르 진동한다.
한편, 아르페지오의 운동이 소강된 후 몇 개의 음이 느리게 지속되는 부분 역시 작품의 또 다른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 )의 <프라트레스> (Fratres)와도 일견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프라트레스>가 아르페지오가 부재하는 빈 공간을 다른 악기의 유려한 화성으로 채웠다면, <미소 III>은 아르페지오가 쉴 때도 여백 을 오롯이 드러낸 채 바이올린이 홀로 가쁜 호흡을 이어 나가며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여기서 단연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이올린이 지닌 날 것의 음색이다. 비브라토로 소리를 장식 하는 대신 개방현을 활용하고 잔향이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기에, 연주자의 숨과 호흡 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인생을 달관한 자가 풍기는 채취처럼 앙상하고 창백한 음향으로 깊은 여운을 내뿜는 부분이다.
이처럼 채움과 비움, 울림과 여백의 교차는 화려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궁극적 본질이 결코 악기의 비르투오소한 측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르페지오 의 약동하는 움직임이 단단한 지층을 뚫고 발아하는 싹을 연상시킨다면, 음악적 운동이 느려 진 채 앙상한 음향이 드러나는 부분은 생의 자연스러운 소멸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계속하여 교차되면서 생성과 소멸, 운동과 쉼을 거듭하며 순환하는 생명의 원리를 보 여주고 있다. 청중은 단지 화려한 기교만이 아닌, 어둠을 뚫고 발산하며 이지러지는 끈질긴 음악적 생명력에 경이로워하며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인터뷰 작곡가 이혜성과의 대화 2020년 7월 26일
원유선: 선생님의 작품세계에서 독주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바이올린, 마림바, 국악기를 비롯해 동종악기를 위한 작품을 굉장히 많이 작곡해 왔는데요. 음악적 효과를 쉽게 낼 수 있는 편성을 떠나 독주곡에 천착해 온 이유가 무엇인지요? -
이혜성: 독주악기는혼자서모든것을다표현해야 하기에 어느 작곡가에게도 부담이지 요. 동종악기를 위한 작품의 경우 현악 오케스트라보다 당연히 바이올린 10대나 첼로 10대 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작 품을 완성한 후 한동안 독주곡이나 동종악기의편성을 쓰고싶지 않을만큼 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었지요. 그럼에도 독주악기나 동종악기 앙상블에 대한 음악적 시도를 멈추지않은이유는제안에내재된엄청난도전 정신 때문인가 봅니다. 곡을 마무리한 후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못다 한 시도 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지요. 극한을 뛰어 넘고 싶은 용감함이라고 할까요? 가령 베이스 앙상블단체 DaBass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치유 5>(2011)는 더블베이스 10중주의 편성이었는데, 끝날 즈음에는 시간을 더 주어도 못 쓸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심정이었지 요. 그런데도 이후에 <치유 7>(2012)과 <치유 10>에서 10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두 편이나 더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치유 7>에 서 아쉽게 생각했던 소리의 결합을 <치유 10> 에서 구현하고 싶은 의지가 불타올랐거든요.
원유선: 독주곡만큼이나 악기 음향에 대해 치열 하게 탐구해 왔다는 것도 특징적입니다. 특히 마 파 피치카토나 엔젤릭 트레몰로 같은 다채로운 바이올린주법을개척하게된배경중하나로동 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예찬 선생님과의 협업과 정을꼽을수있을것같습니다.소리를확인하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이혜성: 작품의 구상부터 특정 악기의 주법 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작곡 가인 제 기본 입장입니다. 바이올린과 플루트 처럼비슷한음역의악기라도서로다른음색 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싶었죠.고맙게도쌍둥이동생이있어돈 독한 믿음을 전제로 바이올린 연주기법에 대해 늘 편하게 이야기하고 상의할 수 있었습니 다. 작곡가로서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은 나를 위해 일부러 연주홀에서 소리를 내어 음원을 보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연주기법을 만들고, 연주 가능하지만 충분한 울림이 적어서 사용 하지 않는 소리의 조합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협업의과정속에서작곡가와연주가의기 싸움도 치열했습니다. 연주법이 어려운 경우 연주자의 입장에서 혹독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고, 작곡가의 입장에서 수긍할 수 없을 때는 며칠씩연락을안하고서로고민을거듭하기 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는 더없이 귀중 한 시간이 되었고, 바이올린 협주곡 <새야새 야>(2003)와 현악 오케스트라, 7개의 독주 바이올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지요.
원유선: 그간 <깨어있음>(1990)이나 <마루타> (2002), <탈>(1994), <상한 영혼을 위하여>(1995), 처럼 역사의식을 드러낸 작품과 <허난설헌>(2002), <죽란시사>(2006), <어여차>(2017), <화가 이중 섭>(2019)처럼 과거 인물을 조명한 작품 등에서 한국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본인을 한국작곡가로서 정의할 수 있는특징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이혜성: 평소 한국 작곡가라는 긍지와 사명 감을늘갖고있습니다.특히일제강점기와 우리 역사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강한 편입니다. 모 친께서5살때우리춤을가르치는학원을보 내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장구 장단, 칼춤, 작은북을 두드리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 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인데, 생각해 보니 어릴 때의 경험이 30대부터 시작된 국악 에대한열정을촉발하는계기중하나였던것 같습니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상반되는 문화 를 함께 작품속에어우를수있어늘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원유선: 30대 후반부터 <고요 2>(1999), <고즙>(2000), <어여차>(2009),<죽란시사>를 비롯해 국악기로 된 작품을 많이 작곡한 것이 눈에 띕니다.유학이후 서양음악의 어법을 정교하게 구축해 오다가, 국 악기를 위한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 이혜성: 모교인 이화여대에 국악과가 있어 자주 국악기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 학 시절에는 큰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기 전부터 귀국하면 본격적으로 국악 기전반에대한연구와함께가야금을배우고 싶다는열망을 가졌지요.그때 황병기선생님을 만나 답답했던 한국작곡가로서의 정체 성을 풀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후 국 악작곡가 이해식 선생님의 권유로 장구를 따로 배웠고, 피리, 아쟁을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악에 제2외국어 같은 낯설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편하면서도 언제나 흥미롭고 즐겁습니다.
원유선: 2000년대 이후 뚜렷하게 변화된 음악적 경향으로 조성의 사용과 반복을 들 수 있을것같습니다. 그간 많은 작곡가들이 반복을 중요한 음악적 도구로 사용해 왔는데요. 선생님의 작품세계에서 반복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 이혜성: 30대에는 일부러 반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그다음작품에는앞의작품과는완전히다른 구상을 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또 마음을 다해 작업하기보다는 머리로만 작업하는 논리와 이론이 앞선 완벽한 작품에 정진중 이었어요. ‘꼭 이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 듦을 자처했던 것이죠. 그 때 에스토니아 작곡 가 아르보 패르트는 저에게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패 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tintinnabular(종의 울림)”속에서 느껴지는 소리의 간결함과 깊고 깊은울림의 세계는 저에게 큰 경종을울렸습 니다. 당시 작품세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성찰 하면서 불협화음에 대한 입장도 급격히 달라 졌고, 간결함과 단순함처럼 꼭 써야할 음만 쓰고싶은편안함속에서 그렇게고 되고 낯선 길을 지나 이제야 작곡하는마음이조금 충만해졌습니다
원유선: 지난 20년간 음악적 교육환경이 급격히 바뀌어 왔습니다. 피날레 같은 작곡 소프트웨어 를 비롯해 유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처럼 원하는 음원을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속에서, 학생들이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기술로 변화된 음악적 환경에 대한 생각과, 교육자로서 작곡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 이혜성: 올해는 코로나19로 학생들의 작곡환 경과 속도의 변화가 더욱 컸고, 가르치는 교육 자입장에서는사실 그 속도에 계속놀라워하 는 중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학생들에게 작곡을 가르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빠른 스피드까지 함께하는 컴퓨터를 사용한 작곡을 테크놀로지의 속도 변화 만큼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상대 적으로 느리게 작곡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제 는 더 이상 ‘소리상상’하라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되었지요.가끔은 작곡이 아닌 피날레 테크닉을가르치고 있을 때가 있어서 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저 ‘컴퓨터를 통한 소리라도 잘 듣는것’을 잊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어쩌면 이런 당부조차도AI가 대신 할 날이 곧 도래하겠지요.
원유선: 3년 전 인터뷰에서 ‘현재는 작곡가로서 치열하게 살아 왔던 시간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가는 시기’라고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현재 어떤 작품들을 작업하고 계시는지, 또한 향후 펼치고 싶은 음악세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혜성: 돌아보면 제가 쓰는 언어중에‘ 치열’ 하다는말을 자주 썼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 과연 한 순간도 치열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 가?’ 자문하게 되지요. 최근에는 <위로>와 <기 도>를 주제로 어느새 다시 연작을 쓰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악기로 된 작품을쓰고싶은 열정은늘식지않아서 좀 그 열이식으면편할텐데 생각하기도합니다.가끔작업시작 전에 여유가 있을 때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의 가곡 <내일>(Morgen)을 들으며, 삶을 치열하게 산 어느 노부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책임질 일과 할 일이 많아서 어렵겠지만 조만간 조용하고 행복한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