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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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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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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하느님 뜻에 따른 삶, 삶의 근본과 출발점을 하느님에 기초하는 삶, 바로 이것을 오늘 복음은 힘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복음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음과 준비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등불을 켜놓고 기다린다는 것은 주인이 집 안으로 들어올 때 주인의 앞길을 비추는 일을 조금도 지체 없이 바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종들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본문은 교회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에의 초대를 가리킬 수도 있고, 오늘 복음이 놓인 전체 문맥의 관점(12ㅡ1-13,9)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준비에의 도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깨어 있음과 준비됨은 무엇보다도 주인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을 위한 것인데 ′즉각적인′이라는 단어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에 때가 있으며, 그 ′때′를 놓칠 때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응답′이라는 단어 안에서 깨어 있음이 단순한 정신 상태의 각성이 아닌 의지와 마음을 포함한 전인격적 자세임을 제자들의 모범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도둑의 비유가 말해주는 것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내′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편 깨어 있는 종이 받을 상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깨어 있을 필요에 대한 동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시합니다. 제때에 주인을 잘 맞이한 종들은 식탁에 앉아서 주인의 시중을 받습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고 새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그분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얼마나 관대하게 보상해 주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이 받을 상급은 칭찬이나 경제적 보상도 아닌 바로 주인이 되는 것, 아니 주인이 시중을 들어준다는 것 안에서 주인보다 더 귀중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상급이 아니겠습니까!


이 비유에서 주목할 것은 ′주인′이라는 단어를 여러 그리스어 중 굳이 예수님에게 적용되었던 ′주님′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시중들다′라는 동사를 예수 수난의 문맥 안에서 사용된 똑같은 동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루카복음사가가 예수님을 시중들며 섬기는 사람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의 주인인 예수님은 바로 우리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기꺼이 종의 모습을 취하신 분이시고(필리2,7참조), 우리를 당신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섬기신다는 표징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의 몸값으로 내신 분입니다.(마태20,28) 이것이 주인한테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종이 받는 상급입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상급을 맛보았고 또 앞으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로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했기에 이 상급을 받았고,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라는 그분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우리를 열어 나갈 때 계속해서 체험할 수 있는 보상이며, 마침내 그분이 오실 때 온전하게 내 것으로 차지할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묵상(Meditatio)

내 생각과 계획 그리고 삶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뜻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요? 그분은 내 모든 행동의 시작이요 그분의 뜻이 내 결정의 근본적인 기준이 되는 지요? 그분의 뜻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혹시 내게 무거운 짐으로만 느껴지거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게 하는지요?
나는 얼마나 그분 사랑의 보상에 더 마음을 쓰고 기대하고 있는지요?


기도(Oratio)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시편90,12)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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