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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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1:1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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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는 로마시대에 성행하던 검투경기장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황제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장면을 보면서 열광하는 광경이 너무나 생생하다. 하기야 오늘날에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는 온갖 격투기가 대중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다른 인간을 폭행하거나 살육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가학성(加虐性)이 인간심성의 바닥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것 같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자기 나라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대량살상을 저지르는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 왔고, 자신이 옳다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다른 인간을 참혹하게 죽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정신병자도 아닌 멀쩡한 인간이 재미로 남을 괴롭히거나 죽이기를 즐기는 사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사악한 존재인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런데도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할 수 있는가?
소용돌이치는 사회문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그런데 한창 천진난만하게 자라나고 있어야 할 초등학교 어린이들이나 청운의 꿈을 꾸기 시작할 중학생 소년들이 같은 교실에서 배우는 친구들을 따돌리고 폭행하고 갈취하는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어린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일어나는 현실을 보면서 누구나 가슴 깊이 통증과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이러한 사실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터져 나온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이 드러내는 증세의 한 가지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모두 어른들의 포악하고 비열한 행동들 뿐이니, 이것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무슨 모범을 보였는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었는지 돌아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가정에서 부모는 자식들을 건강한 인격체로 키우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학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출세하기만을 바랐으니, 학교교육도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공허한 잠꼬대가 되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학교교육이 속으로 병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교육정책도 입시제도만 이리저리 바꾸어가고 이념투쟁의 마당으로 삼다가 무상급식으로 결론을 삼았으니, 뿌리깊이 곪은 병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지 않았겠는가. 부모는 부모답지 못했고, 스승은 스승답지 못하고, 학교는 학교답지 못하고, 나라는 나라답지 못하면서, 아이들이 건전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어찌 헛된 꿈이 아닐 수 있으랴
좀 더 뿌리를 찾아보면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본성이 사악한데, 이를 순치시키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린아이 때부터 사악한 본성이 터져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인간은 인간 자신에 대해 무척 낙관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불교에서는 사람마다 지닌 불성(佛性)을 깨우치기만 하면 누구나 바로 부처가 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 하고, 유교에서도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품이라 한다"고 하였다. 인간 속에서 부처를 찾고 신을 찾고 하늘을 찾았으니, 인간보다 더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순수하고 선하지만 짐승은 타고난 기질이 혼탁하여 탐욕스럽고 악하니 인간보다 열등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경험하게 된다. 짐승이야 먹이를 사냥하는데 그치지만, 인간은 전쟁터에서 적을 살육할 뿐만 아니라 이념이나 이해가 갈라지면 동족을 학살하기도 하고 가족을 죽이기도 하니, 인간의 잔인함이야 짐승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심하다. 때로는 인간을 가리켜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 꾸짖는 말이 절실하게 들릴 때가 있다.
인간의 마음은 백지, 인간다운 품격을 길러야
다산은 인간의 성품이 선하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부여받았을 뿐이지 타고나면서 선한 것은 아님을 분명하게 밝혔다. 선은 선한 가치를 선택하여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에 너무 방심하여 인간적 품격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한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어릴 때부터 악을 거부하고 선을 실천하여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도록 훈련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어린 아이라 하여 누구나 순진하고 착한 것은 아니라, 오히려 악에 유혹되기 쉽고 선으로 이끌어지기 어려움을 인정하여야, 어려서부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각성할 수 있다. 가정에서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도록 가르치며, 서로 존중하고 사양하는 예절을 생활 속에서 가르쳐야 한다. 남을 괴롭히는 아동을 처벌하는 방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우며, 남을 배려하고 화합하는 품성을 길러주는 교육의 목표가 분명하여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폭력을 보면서 어린이들만 탓하고 어른들이 자신을 반성하지 못한다면 병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치료한다는 것이 말단만 만지작거리다가 도리어 우리 사회에 병의 뿌리만 깊게 만들고 말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는 로마시대에 성행하던 검투경기장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황제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장면을 보면서 열광하는 광경이 너무나 생생하다. 하기야 오늘날에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는 온갖 격투기가 대중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다른 인간을 폭행하거나 살육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가학성(加虐性)이 인간심성의 바닥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것 같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자기 나라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대량살상을 저지르는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 왔고, 자신이 옳다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다른 인간을 참혹하게 죽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정신병자도 아닌 멀쩡한 인간이 재미로 남을 괴롭히거나 죽이기를 즐기는 사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사악한 존재인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런데도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할 수 있는가?
소용돌이치는 사회문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그런데 한창 천진난만하게 자라나고 있어야 할 초등학교 어린이들이나 청운의 꿈을 꾸기 시작할 중학생 소년들이 같은 교실에서 배우는 친구들을 따돌리고 폭행하고 갈취하는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어린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일어나는 현실을 보면서 누구나 가슴 깊이 통증과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이러한 사실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터져 나온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이 드러내는 증세의 한 가지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모두 어른들의 포악하고 비열한 행동들 뿐이니, 이것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무슨 모범을 보였는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었는지 돌아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가정에서 부모는 자식들을 건강한 인격체로 키우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학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출세하기만을 바랐으니, 학교교육도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공허한 잠꼬대가 되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학교교육이 속으로 병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교육정책도 입시제도만 이리저리 바꾸어가고 이념투쟁의 마당으로 삼다가 무상급식으로 결론을 삼았으니, 뿌리깊이 곪은 병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지 않았겠는가. 부모는 부모답지 못했고, 스승은 스승답지 못하고, 학교는 학교답지 못하고, 나라는 나라답지 못하면서, 아이들이 건전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어찌 헛된 꿈이 아닐 수 있으랴
좀 더 뿌리를 찾아보면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본성이 사악한데, 이를 순치시키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린아이 때부터 사악한 본성이 터져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인간은 인간 자신에 대해 무척 낙관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불교에서는 사람마다 지닌 불성(佛性)을 깨우치기만 하면 누구나 바로 부처가 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 하고, 유교에서도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품이라 한다"고 하였다. 인간 속에서 부처를 찾고 신을 찾고 하늘을 찾았으니, 인간보다 더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순수하고 선하지만 짐승은 타고난 기질이 혼탁하여 탐욕스럽고 악하니 인간보다 열등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경험하게 된다. 짐승이야 먹이를 사냥하는데 그치지만, 인간은 전쟁터에서 적을 살육할 뿐만 아니라 이념이나 이해가 갈라지면 동족을 학살하기도 하고 가족을 죽이기도 하니, 인간의 잔인함이야 짐승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심하다. 때로는 인간을 가리켜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 꾸짖는 말이 절실하게 들릴 때가 있다.
인간의 마음은 백지, 인간다운 품격을 길러야
다산은 인간의 성품이 선하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부여받았을 뿐이지 타고나면서 선한 것은 아님을 분명하게 밝혔다. 선은 선한 가치를 선택하여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에 너무 방심하여 인간적 품격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한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어릴 때부터 악을 거부하고 선을 실천하여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도록 훈련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어린 아이라 하여 누구나 순진하고 착한 것은 아니라, 오히려 악에 유혹되기 쉽고 선으로 이끌어지기 어려움을 인정하여야, 어려서부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각성할 수 있다. 가정에서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도록 가르치며, 서로 존중하고 사양하는 예절을 생활 속에서 가르쳐야 한다. 남을 괴롭히는 아동을 처벌하는 방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우며, 남을 배려하고 화합하는 품성을 길러주는 교육의 목표가 분명하여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폭력을 보면서 어린이들만 탓하고 어른들이 자신을 반성하지 못한다면 병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치료한다는 것이 말단만 만지작거리다가 도리어 우리 사회에 병의 뿌리만 깊게 만들고 말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