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억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다.” - 역사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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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1:2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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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기억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다.” - 역사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건축가, 승효상
글 : 이연경(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예술가의집)
▲ 건축가 승효상이슬을 밟는 집,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薺)를 찾아간 것은 지난 15일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검붉게 변했다가 맑은 날이면 다시 아름다운 붉은 색으로 변하는 코르텐 소재의 건물 이로재는 활기찬 대학로를 향해 조용히 서 있는 침묵의 공간이다.
하루에 5시간 이상은 잠들어 있지 않고 평균 3~4권의 책을 사무실 곳곳에 비치해두고 동시에 읽어낸다는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과 자신의 건축 작업에서는 철두철미하지만 타인에게는 소박한 눈웃음과 털털한 마음을 내보일 줄 아는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건축사무소 이로재의 2, 3층은 사무실, 4, 5층은 주택, 지하 1층은 30여명의 직원과 매일 아침 1시간 30분 동안 수련을 하는 검도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온전한 그만의 사유 공간인 1층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Q. 우선 가장 최근의 작업인 West 8과 컨소시엄으로 출품하신 서울 용산 치유공원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용지 면적만 243만㎡로 한국의 센트럴파크로 불리고 있는데요. 남산, 용산공원, 한강을 잇는 생태축 복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2016년 말에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17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치유가 이번 작품의 키워드 같습니다만, 선생님께 직접 말씀 듣고 싶습니다.
- 용산공원은 땅이 80만 평 정도 되니까 굉장히 크죠. 여의도가 90만 평이니까 여의도와 비슷하고, 미국 센트럴파크가 1백만 평이고요. 시민이 1천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에 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경우죠. 용산은 지난 100년 동안 외세에 의해서 점거되어 우리의 역사에서 완전히 블랙홀이 된 땅입니다. 일제 때는 일본 병영으로, 해방 후 지금까지는 미군기지로 외세가 점령하면서 동산을 깎아냈고 그래서 지금은 오염이 많이 되었을 거에요. 그래서 그 땅은 자연적으로도 치유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치유를 해야 하죠. 이런 관점에서 기억과 치유라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땅을 원점으로 돌린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 못되어서 그 안에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어요. 일본군이 사용하던 사령부 시설이나 위수 감옥 등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을 비롯해서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건물은 남기고 문화시설로도 사용할 수 있겠죠. 이렇게 역사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방향으로 용산공원을 계획했어요. 또 용산은 지정학적으로 보면 서울의 한 가운데에 있어서 서울 시민들이 접근하기 쉽고 시민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장소로서 의미가 있지요. 중요한 것이 우리나라 한반도는 사람으로 치면 척추와 같은 백두대간이 있는데 그 축의 한 가지가 함북정맥이라고 해서 이 가지는 금강산에서 갈라져 삼각산으로 흐르다가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으로 연결되어서 다시 용산으로 들어와서 한강으로 빠져요. 이것을 연결하면 생태가 분명히 이어지거든요. 어떻게 보면 백두산의 다람쥐가 한강까지 내려와서 놀 수 있는 길을 만든다는 점에서 생태축을 복원한다는 의미가 되지요. 이런 점에서 치유라는 단어가 굉장히 적절하다고 보이고요.
▲ 건축가 승효상의 작업실
Q. 세상은 훌륭한 스승과 청출어람, 그의 제자에 주목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이신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조심스럽습니다만, 스승인 김수근 선생님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어쩌면 선생님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성장하게 하신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수근 선생님과의 처음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그 인연을 만들어준 김희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김수근 선생님은 1974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대학 4학년 때 국전에서 입선을 했는데 그 때 심사 위원 중 한 분이 김수근 선생님이셨어요. 처음부터 김수근 선생님 문하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고, 당시는 유신 말기를 지나며 신군부의 등장으로 체제에 대한 반대 데모가 굉장히 심해서 학교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였죠.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 때 김희춘 선생님이 저에게 큰 기운을 주셨죠. 그런데 김희춘 선생님도 계셨지만 김국영 선생님도 계셨어요. 김국영 선생님은 당시 조교셨는데 내가 보기엔 천재에요. 사교성이 전혀 없고 항상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넥타이만 매고 하얀 와이셔츠만 입고 말도 조곤조곤 하시고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시고 책만 계속 보시는 분이셨는데 그 분이 학교 수업은 못 나와도 건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시면서 내가 건축을 공부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김희춘 선생님은 내가 학교 다닐 때 굉장히 존경을 받는 분이셨죠. 인품도 훌륭하시고 무서워서 가까이 하기 어렵고 서로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지만 나를 굉장히 예뻐해 주셨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국전 출품 준비 때 김희춘 선생님이 무심한 듯하지만 지도해주셨고 4학년 졸업전 준비 때도 승효상이 졸업전의 리더로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때 선생님이 나를 굉장히 아껴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분이 김수근 선생님께 인도해주셔서 나는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공간’에 들어가 김수근 선생의 건축에 탐닉하며 며칠 몇 주일, 몇 달을 밤과 낮을 새우며 제도판을 붙들고 건축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Q. 15년간 문하에서 김수근 건축의 주옥과 같은 작품들, 특히 마산성당, 경동교회, 국립청주박물관 건축에 크게 공헌을 하셨는데 1986년 김수근 선생 사후 장세양 선생님과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어렵게 ‘공간’을 맡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1989년 독립해서 세운 건축사무소가 ‘이로재‘인데요, 자 이제 승효상 건축을 고민하고 모색해야 할 시기가 제대로 왔습니다. 그 즈음 결성된 4.3 그룹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건축전시회 <이 시대 우리의 건축>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 4.3 그룹은 1990년 4월 3일에 모였던 그룹인데 저를 포함해서 곽재환 김병윤 김인철 동정근 도창환 민현식 조성룡 등 30대 후반 ~ 40대 후반의 건축가 14명이 활동을 했죠. 이전까지는 건축의 모임이 전부다 학연이나 지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어요. 그러니까 서로 건축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할 분위가 전혀 안됐었죠. 지금도 한국건축계가 그런 문제를 안고는 있습니다만, 그런데 그 때 처음으로 그런 부분을 철폐하고 비슷한 연배의 건축가들이 모여서 한국 건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토론을 했어요. 해외 건축 기행도 하고 전시회도 열고 유명한 교수, 철학자, 사회학자를 모셔서 세미나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때 만난 인연 중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있지요. 당시의 나는 89년 12월에 ‘공간’을 떠나 막 독립을 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할 때였는데 4.3 그룹 활동에 참여하면서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연구하고 내 건축을 다듬을 수 있었어요. 내가 저 사람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내 건축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한 그룹이었죠. 우리는 매 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였어요. 그 때는 한 사람의 작품을 창피할 정도로 정말 적나라하게 비판했습니다. 밤새도록 토론했어요. 비판을 하는 능력도 늘었지만, 비판을 받는 능력도 늘었어요. 그러면서 서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지요.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모르고 만났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92년 12월 12일,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면서 서로 주제를 정하자 해서 나는 ‘빈자의 미학’을 처음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 보니 서로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1년 후에 3~4개 그룹으로 쪼개어지면서 93년 4월 3일 마지막 모임 이후 4.3 그룹은 자연스럽게 해체됩니다.
Q. 1993년 제4회(수졸당), 2000년 11회(웰콤시티)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을 비롯한 다양한 수상 작품들(수백당, 혜화문화관 등)은 선생님의 건축 인생에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요? 특히 수졸당의 주인인 유홍준 선생님과는 4.3 그룹 활동 당시 교류가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 수졸당을 설계하면서 빈자의 미학을 발표했으니까 수졸당은 승효상 건축의 첫 번째 작품이고 그래서 나한테 의미가 있지요. 유홍준 선생이 4.3 그룹을 굉장히 지지해 주었고요. 수졸당은 당시 유홍준 선생이 가난한 학자였고 지금처럼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을 때 지은 조그만 집입니다. 그 때의 나는 ‘공간’에서 독립 후 승효상 건축을 해야 되는데 오랜 세월 김수근 건축만 해와서 승효상 건축이 뭔지를 알 수가 없어 굉장히 고민했었습니다. 승효상 건축을 하기 위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빈자의 미학’을 내 건축의 화두로 삼겠다고 선언한 후 처음 설계한 건축이 수졸당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 후 7년이 지나 수졸당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건축한 웰콤사옥으로 건축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을 받는 것은 그렇게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주시면 감사히 받고 안 받아도 그만이고 그렇습니다.
Q. 2002 국립현대미술관 오늘의 작가, 2007 한국미술 여백의 발견 전시 공간 연출, 2011 광주비엔날레, 2012 문화역 284 전시 등 다양한 전시회에 참여하고 계시는데요. 건축 설계 이외에 이와 같은 전시에 참여하시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북경 전문대가, 장성호텔, 중국 차오웨이 소호, 북경 물류항 마스터플랜, 금지 주상복합계획, 웨이하이주거단지 계획 등 국제적인 규모의 프로젝트들도 많이 진행을 하시는데 동시대 미술가나 건축가 친구들과의 작업은 어떠한 장점이 있을까요?
- 단독이나 공동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각각 취해야 될 장점들이 있죠. 같이 하면 다른 부분을 나타내면서 같이 공유하는 부분이 굉장히 재미가 있고 혼자 할 때는 명확하게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는 특별히 전시가 많은데 지금 서울역에서 전시를 하고 있고, 베니스비엔날레의 초청을 받아서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한 10월에는 중국에서 11월은 일본에서 각기 다른 전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나는 외국에 승효상 건축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건축을 알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서 대부분 그런 요청이 있을 때는 마다하지 않고 응하게 되죠. 어떻게 하면 세계의 중심에 한국의 건축을 끌어들이는가가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이런 것은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건축에 대해서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고 또 큰 건축설계사의 관심도 부족하지요.
Q. 199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베니스에 한국관을 설립하고 이후 한국관은 매년 주목할 만한 미술과 건축을 소개해왔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홀수 해에는 미술전이 열리고 짝수 해에는 건축 전이 열리는데 올해는 짝수 해로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열리지요. 2012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대전대학교 30주년기념관- 2012 베니스비엔날레는 올 8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Common Ground‘라는 타이틀로 겉모양에 치중하는 건축의 경향에서 탈피해서 건축을 이루는 본질적인 주제가 무엇인가를 찾아보자는 주제의 전시가 열립니다.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의 건축전 디렉터는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맡았고 한국관은 ’건축을 걷다-Walk in Architecture′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김병윤 대전대 교수가 커미셔너를 맡았지요. 저는 주제전에 초청을 받았는데 제가 한국 건축가 2명을 더 초청하겠다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민현식, 이민아 두 분과 함께 세 명의 건축가가 ‘Common Ground‘라는 주제로 지난 10여년 동안 작업을 해왔던 대전대학교 캠퍼스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대전대학교 교내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학교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서 지금은 학생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저는 그러한 현상에 관해 주목한 세 사람의 협업을 다루려고 합니다. 전시는 주로 모형과 영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저 같은 경우는 가로, 세로 각 6m 정도 규모의 모형을 전시할 계획입니다. 모형 안에 건물만 10동이 넘습니다.
Q. 승효상 건축 인생에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내가 건축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설계해서 완성을 한 것이 마산성당이에요. 25살 김수근 선생님 문하에 있을 때인데 김수근 선생님은 그 때 종교인이 아니셨으니까 종교에 대해 잘 모르셨고 저는 종교인이니까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고 건축과 연결시킬 지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완성이 되고 난 후에 마산성당을 가봤는데 여공이 성당을 들어갈 때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갔다가 기도를 하고 성당을 나오는 모습이 굉장히 평화로워보였어요. 내가 만든 건축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변화해서 밝아져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그 때 내가 건축을 하면서 보람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러니까 건축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거죠. 그 이후로는 내가 설계한 건축 속에서 사는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하죠. 그렇지만 사실은 내가 지은 것들 다 보면 잘못된 점이 보여서 괴롭죠. 그로부터 배우기는 하지만 항상 내 건축 속에서 사는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 마산 양덕성당(1977)
Q. 선생님 설계하신 것 중에 걸작이 있다면 어떤 작품인지 말씀주세요.
- 설계하는 것 하나하나가 다 걸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하죠. 완성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기는 하지만요.
Q. 꼭 해보고 싶은 건축이나 계획하고 계신 건축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 건축이라고 하는 것이 작은 집이나 큰 집이나 마찬가지로 같은 가치가 있는데 마을 하나는 꼭 한 번 전체를 내 손으로 설계하고 싶어요. 마을을 하나 설계해서 촌장을 하고 싶어요. 마을을 청소하는 노인이 되어도 좋고요. 어디든 지역은 상관이 없고 나쁜 땅일수록 좋아요. 내가 설계하는 땅이니까.
Q.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빈자의 미학, 비움, 건축에 있어서의 윤리는 진정한 자연을 만나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워내고 자연을 우주의 근본으로 여겨 그저 자연 속에서 겸손하게 지내며, 집착과 욕망, 탐욕 편견에서 벗어나야지만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도가의 이상적인 삶과 자유정신과 상당한 연결고리가 있어 보입니다. 요즘 선택적 기금제나 공공미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많은데 공공미술이나 도시 계획 단계에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건축에서의 윤리나 최고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 당연히 공공성이죠.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은 도시에 있는 도시민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도시민이라고 하면 특정 부류가 아니고 도시에 살기 위해서 온 익명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환경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정하기가 힘들어요. 공공미술이 특정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공공성을 상실한 것이 되니까 공공미술이 아닌 거죠. 공공의 장소에 있다고 공공성이 아니죠.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미술품 자체보다는 주변에 관한 생각이 있어야 된다 이거죠. 주변과 연관을 맺어서 예컨대 공공미술이 하나 광장에 들어선다면 광장의 성격이 더 명확해질 수 있는가 아니면 주변을 장악할 생각이 있는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하죠. 공공미술 자체의 형상이 어떠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보다 더 큰 장소에 관한 문제가 중요하죠. 그래서 먼저 장소에 관한 것을 따지자는 거죠. 공공미술 자체의 표현의 문제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결여된 공공미술이 도처에 많아요. 굉장히 웃기는 경우가 많죠. 거추장스럽고 장소의 질을 떨어뜨리는. 세종대왕 동상도 마찬가지지요. 작품 자체는 좋을 지 모르겠는데 장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죠. 위치나 크기 같은 것들이요.
Q. 좋은 건축이란 무엇입니까?
- 나는 이 질문에 세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첫 번째는 합목적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건축이 소기의 목적과 기능을 잘 표현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학교는 학교 같아야 하고 교회는 교회 같아야 하며 집은 집 같아야한다는 말이죠. 좋은 건축은 그 건축이 수행하여야 하는 프로그램을 정확히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한 건축만이 장구한 세월을 거쳐 훗날 고고학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두 번째는 시대와 관련이 있는데 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죠. 우리는 건축이 지어졌던 사회의 풍속과 문화를 건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건축지를 발굴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시대의 문화적 소산이 건축이며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공법과 재료와 양식으로 지어야 바른 건축이 됩니다.
세 번째는 건축과 장소의 관계입니다. 건축은 반드시 땅 위에 서는 것을 전제로 하죠. 현실의 땅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땅들과 붙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땅마다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또 이 땅들은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장구한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고요. 이렇게 공간적 시간적 성격은 한 땅의 특수한 조건을 만들고 지리적 역사적 컨텍스트를 가지게 된 땅을 우리는 장소라고 부릅니다. 이 장소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한 건축이 바른 건축이 되는 거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에서 주최한 ‘명강의 프로그램’에서 강연 중인 승효상
Q. 선생님께서는 그 동안 여러 권의 책도 내셨고 다음 책으로 발간될 가능성이 있는 에세이를 쓰고 계십니다. 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에서 주최하는 명강의 프로그램에 강연자로 참여하시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전해주셨는데요,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은 문학적 소질이지 예술적 기예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많은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처럼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하는 후학이나 자신의 영역에서 무한 열정으로 세계 속에 기여하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 스스로 왕따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경계 안에서 놀지 말고 경계 밖에 서서 경계 안을 항상 감시하고 관찰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되어야, 다시 말하면 자기를 객관화시켜야 자기가 무언가를 이룰 수가 있죠. 그냥 경계 안, 제도에 휩싸여 있으면 절대 자기를 객관화시킬 수가 없어서 끌려 다니기 쉬워요. 같이 놀지 말고 같이 어울려 다니지 말고 혼자 있고 스스로 밖에 있을 줄 알고 스스로 혼자 있음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죠. 스티브 잡스가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했는데 그 말을 빌려 ‘stay out, stay alone’하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하게 자기 길을 찾을 수 있어요. 특히 건축하는 사람은 더 그렇죠. 또 많이 보아야 하는데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혼자 있어야 해요. 자기를 객관화시켜야 볼 수가 있지 어울려 다니면 볼 수가 없죠. 그래서 여행도 혼자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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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承孝相 / Seung H-Sang)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엔나공과대학(Vienna University of Technology/German: Technische Universität Wien)에서 수학했다. 1974년부터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履露齊)를 설립한 후 현재까지 대표로 있다. 1990년 4월 3일 만들어진 4.3 그룹에 참여하면서 한국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시작하였고, 1992년 12월 ‘이 시대 우리의 건축’ 전시에 참가하였다. 이후, 수졸당(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1993), 순천향대학교도서관(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1997), 수백당(한국건축가협회상, 1998), 웰콤시티(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2000, 한국건축가협회상 특별상, 2001), 파라다이스상 문화예술부문,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화부문(2007), 추사김정희기념관(제주건축문화대상, 2010)을 수상하였고, 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주제관 초청전,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2003년 동경 갤러리 마 초청 건축전, 2003년 펜실베니아대학 초청 건축전, 2005년 베를린 AEDES 갤러리 초청 건축전, 2007 삼성미술관 리움 한국 미술 여백의 발견 전시 공간 연출, 2008-9 Seoulscape 건축도시전 유럽순회전,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3인의이야기 전,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2012년 문화역 284 <문화풍경>에 참가하였고 올 하반기 베니스비엔날레, 중국, 일본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미건사, 1996)>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서울포럼, 1999)> < 건축이란 무엇인가(열화당, 2005)> <공간의 구축(동녘, 2005)> <건축, 사유의 기호(돌베게, 2004)> <지문(열화당, 2009)> <파주출판도시컬처스케이프(기문당, 2010)> 등이 있다.
승효상의 철학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건축 작품과 전시회, 출판물 및 향후 계획 등에 관한 정보는 이로재 홈페이지(http://www.iroje.com)에서 보다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end
글 : 이연경(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예술가의집)
▲ 건축가 승효상이슬을 밟는 집,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薺)를 찾아간 것은 지난 15일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검붉게 변했다가 맑은 날이면 다시 아름다운 붉은 색으로 변하는 코르텐 소재의 건물 이로재는 활기찬 대학로를 향해 조용히 서 있는 침묵의 공간이다.
하루에 5시간 이상은 잠들어 있지 않고 평균 3~4권의 책을 사무실 곳곳에 비치해두고 동시에 읽어낸다는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과 자신의 건축 작업에서는 철두철미하지만 타인에게는 소박한 눈웃음과 털털한 마음을 내보일 줄 아는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건축사무소 이로재의 2, 3층은 사무실, 4, 5층은 주택, 지하 1층은 30여명의 직원과 매일 아침 1시간 30분 동안 수련을 하는 검도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온전한 그만의 사유 공간인 1층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Q. 우선 가장 최근의 작업인 West 8과 컨소시엄으로 출품하신 서울 용산 치유공원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용지 면적만 243만㎡로 한국의 센트럴파크로 불리고 있는데요. 남산, 용산공원, 한강을 잇는 생태축 복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2016년 말에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17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치유가 이번 작품의 키워드 같습니다만, 선생님께 직접 말씀 듣고 싶습니다.
- 용산공원은 땅이 80만 평 정도 되니까 굉장히 크죠. 여의도가 90만 평이니까 여의도와 비슷하고, 미국 센트럴파크가 1백만 평이고요. 시민이 1천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에 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경우죠. 용산은 지난 100년 동안 외세에 의해서 점거되어 우리의 역사에서 완전히 블랙홀이 된 땅입니다. 일제 때는 일본 병영으로, 해방 후 지금까지는 미군기지로 외세가 점령하면서 동산을 깎아냈고 그래서 지금은 오염이 많이 되었을 거에요. 그래서 그 땅은 자연적으로도 치유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치유를 해야 하죠. 이런 관점에서 기억과 치유라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땅을 원점으로 돌린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 못되어서 그 안에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어요. 일본군이 사용하던 사령부 시설이나 위수 감옥 등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을 비롯해서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건물은 남기고 문화시설로도 사용할 수 있겠죠. 이렇게 역사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방향으로 용산공원을 계획했어요. 또 용산은 지정학적으로 보면 서울의 한 가운데에 있어서 서울 시민들이 접근하기 쉽고 시민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장소로서 의미가 있지요. 중요한 것이 우리나라 한반도는 사람으로 치면 척추와 같은 백두대간이 있는데 그 축의 한 가지가 함북정맥이라고 해서 이 가지는 금강산에서 갈라져 삼각산으로 흐르다가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으로 연결되어서 다시 용산으로 들어와서 한강으로 빠져요. 이것을 연결하면 생태가 분명히 이어지거든요. 어떻게 보면 백두산의 다람쥐가 한강까지 내려와서 놀 수 있는 길을 만든다는 점에서 생태축을 복원한다는 의미가 되지요. 이런 점에서 치유라는 단어가 굉장히 적절하다고 보이고요.
▲ 건축가 승효상의 작업실
Q. 세상은 훌륭한 스승과 청출어람, 그의 제자에 주목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이신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조심스럽습니다만, 스승인 김수근 선생님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어쩌면 선생님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성장하게 하신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수근 선생님과의 처음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그 인연을 만들어준 김희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김수근 선생님은 1974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대학 4학년 때 국전에서 입선을 했는데 그 때 심사 위원 중 한 분이 김수근 선생님이셨어요. 처음부터 김수근 선생님 문하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고, 당시는 유신 말기를 지나며 신군부의 등장으로 체제에 대한 반대 데모가 굉장히 심해서 학교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였죠.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 때 김희춘 선생님이 저에게 큰 기운을 주셨죠. 그런데 김희춘 선생님도 계셨지만 김국영 선생님도 계셨어요. 김국영 선생님은 당시 조교셨는데 내가 보기엔 천재에요. 사교성이 전혀 없고 항상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넥타이만 매고 하얀 와이셔츠만 입고 말도 조곤조곤 하시고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시고 책만 계속 보시는 분이셨는데 그 분이 학교 수업은 못 나와도 건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시면서 내가 건축을 공부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김희춘 선생님은 내가 학교 다닐 때 굉장히 존경을 받는 분이셨죠. 인품도 훌륭하시고 무서워서 가까이 하기 어렵고 서로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지만 나를 굉장히 예뻐해 주셨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국전 출품 준비 때 김희춘 선생님이 무심한 듯하지만 지도해주셨고 4학년 졸업전 준비 때도 승효상이 졸업전의 리더로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때 선생님이 나를 굉장히 아껴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분이 김수근 선생님께 인도해주셔서 나는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공간’에 들어가 김수근 선생의 건축에 탐닉하며 며칠 몇 주일, 몇 달을 밤과 낮을 새우며 제도판을 붙들고 건축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Q. 15년간 문하에서 김수근 건축의 주옥과 같은 작품들, 특히 마산성당, 경동교회, 국립청주박물관 건축에 크게 공헌을 하셨는데 1986년 김수근 선생 사후 장세양 선생님과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어렵게 ‘공간’을 맡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1989년 독립해서 세운 건축사무소가 ‘이로재‘인데요, 자 이제 승효상 건축을 고민하고 모색해야 할 시기가 제대로 왔습니다. 그 즈음 결성된 4.3 그룹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건축전시회 <이 시대 우리의 건축>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 4.3 그룹은 1990년 4월 3일에 모였던 그룹인데 저를 포함해서 곽재환 김병윤 김인철 동정근 도창환 민현식 조성룡 등 30대 후반 ~ 40대 후반의 건축가 14명이 활동을 했죠. 이전까지는 건축의 모임이 전부다 학연이나 지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어요. 그러니까 서로 건축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할 분위가 전혀 안됐었죠. 지금도 한국건축계가 그런 문제를 안고는 있습니다만, 그런데 그 때 처음으로 그런 부분을 철폐하고 비슷한 연배의 건축가들이 모여서 한국 건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토론을 했어요. 해외 건축 기행도 하고 전시회도 열고 유명한 교수, 철학자, 사회학자를 모셔서 세미나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때 만난 인연 중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있지요. 당시의 나는 89년 12월에 ‘공간’을 떠나 막 독립을 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할 때였는데 4.3 그룹 활동에 참여하면서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연구하고 내 건축을 다듬을 수 있었어요. 내가 저 사람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내 건축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한 그룹이었죠. 우리는 매 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였어요. 그 때는 한 사람의 작품을 창피할 정도로 정말 적나라하게 비판했습니다. 밤새도록 토론했어요. 비판을 하는 능력도 늘었지만, 비판을 받는 능력도 늘었어요. 그러면서 서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지요.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모르고 만났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92년 12월 12일,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면서 서로 주제를 정하자 해서 나는 ‘빈자의 미학’을 처음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 보니 서로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1년 후에 3~4개 그룹으로 쪼개어지면서 93년 4월 3일 마지막 모임 이후 4.3 그룹은 자연스럽게 해체됩니다.
Q. 1993년 제4회(수졸당), 2000년 11회(웰콤시티)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을 비롯한 다양한 수상 작품들(수백당, 혜화문화관 등)은 선생님의 건축 인생에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요? 특히 수졸당의 주인인 유홍준 선생님과는 4.3 그룹 활동 당시 교류가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 수졸당을 설계하면서 빈자의 미학을 발표했으니까 수졸당은 승효상 건축의 첫 번째 작품이고 그래서 나한테 의미가 있지요. 유홍준 선생이 4.3 그룹을 굉장히 지지해 주었고요. 수졸당은 당시 유홍준 선생이 가난한 학자였고 지금처럼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을 때 지은 조그만 집입니다. 그 때의 나는 ‘공간’에서 독립 후 승효상 건축을 해야 되는데 오랜 세월 김수근 건축만 해와서 승효상 건축이 뭔지를 알 수가 없어 굉장히 고민했었습니다. 승효상 건축을 하기 위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빈자의 미학’을 내 건축의 화두로 삼겠다고 선언한 후 처음 설계한 건축이 수졸당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 후 7년이 지나 수졸당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건축한 웰콤사옥으로 건축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을 받는 것은 그렇게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주시면 감사히 받고 안 받아도 그만이고 그렇습니다.
Q. 2002 국립현대미술관 오늘의 작가, 2007 한국미술 여백의 발견 전시 공간 연출, 2011 광주비엔날레, 2012 문화역 284 전시 등 다양한 전시회에 참여하고 계시는데요. 건축 설계 이외에 이와 같은 전시에 참여하시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북경 전문대가, 장성호텔, 중국 차오웨이 소호, 북경 물류항 마스터플랜, 금지 주상복합계획, 웨이하이주거단지 계획 등 국제적인 규모의 프로젝트들도 많이 진행을 하시는데 동시대 미술가나 건축가 친구들과의 작업은 어떠한 장점이 있을까요?
- 단독이나 공동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각각 취해야 될 장점들이 있죠. 같이 하면 다른 부분을 나타내면서 같이 공유하는 부분이 굉장히 재미가 있고 혼자 할 때는 명확하게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는 특별히 전시가 많은데 지금 서울역에서 전시를 하고 있고, 베니스비엔날레의 초청을 받아서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한 10월에는 중국에서 11월은 일본에서 각기 다른 전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나는 외국에 승효상 건축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건축을 알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서 대부분 그런 요청이 있을 때는 마다하지 않고 응하게 되죠. 어떻게 하면 세계의 중심에 한국의 건축을 끌어들이는가가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이런 것은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건축에 대해서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고 또 큰 건축설계사의 관심도 부족하지요.
Q. 199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베니스에 한국관을 설립하고 이후 한국관은 매년 주목할 만한 미술과 건축을 소개해왔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홀수 해에는 미술전이 열리고 짝수 해에는 건축 전이 열리는데 올해는 짝수 해로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열리지요. 2012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대전대학교 30주년기념관- 2012 베니스비엔날레는 올 8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Common Ground‘라는 타이틀로 겉모양에 치중하는 건축의 경향에서 탈피해서 건축을 이루는 본질적인 주제가 무엇인가를 찾아보자는 주제의 전시가 열립니다.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의 건축전 디렉터는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맡았고 한국관은 ’건축을 걷다-Walk in Architecture′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김병윤 대전대 교수가 커미셔너를 맡았지요. 저는 주제전에 초청을 받았는데 제가 한국 건축가 2명을 더 초청하겠다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민현식, 이민아 두 분과 함께 세 명의 건축가가 ‘Common Ground‘라는 주제로 지난 10여년 동안 작업을 해왔던 대전대학교 캠퍼스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대전대학교 교내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학교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서 지금은 학생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저는 그러한 현상에 관해 주목한 세 사람의 협업을 다루려고 합니다. 전시는 주로 모형과 영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저 같은 경우는 가로, 세로 각 6m 정도 규모의 모형을 전시할 계획입니다. 모형 안에 건물만 10동이 넘습니다.
Q. 승효상 건축 인생에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내가 건축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설계해서 완성을 한 것이 마산성당이에요. 25살 김수근 선생님 문하에 있을 때인데 김수근 선생님은 그 때 종교인이 아니셨으니까 종교에 대해 잘 모르셨고 저는 종교인이니까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고 건축과 연결시킬 지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완성이 되고 난 후에 마산성당을 가봤는데 여공이 성당을 들어갈 때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갔다가 기도를 하고 성당을 나오는 모습이 굉장히 평화로워보였어요. 내가 만든 건축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변화해서 밝아져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그 때 내가 건축을 하면서 보람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러니까 건축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거죠. 그 이후로는 내가 설계한 건축 속에서 사는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하죠. 그렇지만 사실은 내가 지은 것들 다 보면 잘못된 점이 보여서 괴롭죠. 그로부터 배우기는 하지만 항상 내 건축 속에서 사는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 마산 양덕성당(1977)
Q. 선생님 설계하신 것 중에 걸작이 있다면 어떤 작품인지 말씀주세요.
- 설계하는 것 하나하나가 다 걸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하죠. 완성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기는 하지만요.
Q. 꼭 해보고 싶은 건축이나 계획하고 계신 건축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 건축이라고 하는 것이 작은 집이나 큰 집이나 마찬가지로 같은 가치가 있는데 마을 하나는 꼭 한 번 전체를 내 손으로 설계하고 싶어요. 마을을 하나 설계해서 촌장을 하고 싶어요. 마을을 청소하는 노인이 되어도 좋고요. 어디든 지역은 상관이 없고 나쁜 땅일수록 좋아요. 내가 설계하는 땅이니까.
Q.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빈자의 미학, 비움, 건축에 있어서의 윤리는 진정한 자연을 만나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워내고 자연을 우주의 근본으로 여겨 그저 자연 속에서 겸손하게 지내며, 집착과 욕망, 탐욕 편견에서 벗어나야지만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도가의 이상적인 삶과 자유정신과 상당한 연결고리가 있어 보입니다. 요즘 선택적 기금제나 공공미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많은데 공공미술이나 도시 계획 단계에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건축에서의 윤리나 최고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 당연히 공공성이죠.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은 도시에 있는 도시민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도시민이라고 하면 특정 부류가 아니고 도시에 살기 위해서 온 익명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환경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정하기가 힘들어요. 공공미술이 특정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공공성을 상실한 것이 되니까 공공미술이 아닌 거죠. 공공의 장소에 있다고 공공성이 아니죠.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미술품 자체보다는 주변에 관한 생각이 있어야 된다 이거죠. 주변과 연관을 맺어서 예컨대 공공미술이 하나 광장에 들어선다면 광장의 성격이 더 명확해질 수 있는가 아니면 주변을 장악할 생각이 있는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하죠. 공공미술 자체의 형상이 어떠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보다 더 큰 장소에 관한 문제가 중요하죠. 그래서 먼저 장소에 관한 것을 따지자는 거죠. 공공미술 자체의 표현의 문제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결여된 공공미술이 도처에 많아요. 굉장히 웃기는 경우가 많죠. 거추장스럽고 장소의 질을 떨어뜨리는. 세종대왕 동상도 마찬가지지요. 작품 자체는 좋을 지 모르겠는데 장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죠. 위치나 크기 같은 것들이요.
Q. 좋은 건축이란 무엇입니까?
- 나는 이 질문에 세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첫 번째는 합목적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건축이 소기의 목적과 기능을 잘 표현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학교는 학교 같아야 하고 교회는 교회 같아야 하며 집은 집 같아야한다는 말이죠. 좋은 건축은 그 건축이 수행하여야 하는 프로그램을 정확히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한 건축만이 장구한 세월을 거쳐 훗날 고고학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두 번째는 시대와 관련이 있는데 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죠. 우리는 건축이 지어졌던 사회의 풍속과 문화를 건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건축지를 발굴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시대의 문화적 소산이 건축이며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공법과 재료와 양식으로 지어야 바른 건축이 됩니다.
세 번째는 건축과 장소의 관계입니다. 건축은 반드시 땅 위에 서는 것을 전제로 하죠. 현실의 땅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땅들과 붙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땅마다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또 이 땅들은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장구한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고요. 이렇게 공간적 시간적 성격은 한 땅의 특수한 조건을 만들고 지리적 역사적 컨텍스트를 가지게 된 땅을 우리는 장소라고 부릅니다. 이 장소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한 건축이 바른 건축이 되는 거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에서 주최한 ‘명강의 프로그램’에서 강연 중인 승효상
Q. 선생님께서는 그 동안 여러 권의 책도 내셨고 다음 책으로 발간될 가능성이 있는 에세이를 쓰고 계십니다. 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에서 주최하는 명강의 프로그램에 강연자로 참여하시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전해주셨는데요,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은 문학적 소질이지 예술적 기예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많은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처럼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하는 후학이나 자신의 영역에서 무한 열정으로 세계 속에 기여하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 스스로 왕따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경계 안에서 놀지 말고 경계 밖에 서서 경계 안을 항상 감시하고 관찰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되어야, 다시 말하면 자기를 객관화시켜야 자기가 무언가를 이룰 수가 있죠. 그냥 경계 안, 제도에 휩싸여 있으면 절대 자기를 객관화시킬 수가 없어서 끌려 다니기 쉬워요. 같이 놀지 말고 같이 어울려 다니지 말고 혼자 있고 스스로 밖에 있을 줄 알고 스스로 혼자 있음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죠. 스티브 잡스가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했는데 그 말을 빌려 ‘stay out, stay alone’하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하게 자기 길을 찾을 수 있어요. 특히 건축하는 사람은 더 그렇죠. 또 많이 보아야 하는데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혼자 있어야 해요. 자기를 객관화시켜야 볼 수가 있지 어울려 다니면 볼 수가 없죠. 그래서 여행도 혼자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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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承孝相 / Seung H-Sang)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엔나공과대학(Vienna University of Technology/German: Technische Universität Wien)에서 수학했다. 1974년부터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履露齊)를 설립한 후 현재까지 대표로 있다. 1990년 4월 3일 만들어진 4.3 그룹에 참여하면서 한국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시작하였고, 1992년 12월 ‘이 시대 우리의 건축’ 전시에 참가하였다. 이후, 수졸당(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1993), 순천향대학교도서관(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1997), 수백당(한국건축가협회상, 1998), 웰콤시티(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2000, 한국건축가협회상 특별상, 2001), 파라다이스상 문화예술부문,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화부문(2007), 추사김정희기념관(제주건축문화대상, 2010)을 수상하였고, 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주제관 초청전,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 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2003년 동경 갤러리 마 초청 건축전, 2003년 펜실베니아대학 초청 건축전, 2005년 베를린 AEDES 갤러리 초청 건축전, 2007 삼성미술관 리움 한국 미술 여백의 발견 전시 공간 연출, 2008-9 Seoulscape 건축도시전 유럽순회전,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3인의이야기 전,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2012년 문화역 284 <문화풍경>에 참가하였고 올 하반기 베니스비엔날레, 중국, 일본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미건사, 1996)>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서울포럼, 1999)> < 건축이란 무엇인가(열화당, 2005)> <공간의 구축(동녘, 2005)> <건축, 사유의 기호(돌베게, 2004)> <지문(열화당, 2009)> <파주출판도시컬처스케이프(기문당, 2010)> 등이 있다.
승효상의 철학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건축 작품과 전시회, 출판물 및 향후 계획 등에 관한 정보는 이로재 홈페이지(http://www.iroje.com)에서 보다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