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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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1:2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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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1 호
소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김 영 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이른 새벽, 집 앞에 놓여 있는 신문에서 시작하여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다양한 소식과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정확성과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빠른 시간 내에 뚜렷한 근거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거쳐 퍼지는 말들은 그야말로 ‘소문(所聞)’이자 ‘풍문(風聞)’인 것이다.
요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이들 정보에 가담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을 떠나 이젠 거의 순간 이동을 하는 셈이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서부터 유명한 걸그룹의 왕따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디테일해서, 마치 스스로 목격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과연 이 가운데 객관성이 올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는가? 정보의 취사선택에 있어서 각자의 판단력이 없다면, 이는 소문에 고립되는 것일 뿐이다.
뜬소문은 솔깃하지만 진실성이 없어
속도와 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문과 그에 대한 판단 문제는 시대를 관통하는 고민이었다.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풍문으로 사람을 논하는 것(風聞論人)”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을 비평할 때에는 반드시 근거를 내세워 감히 숨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약 뜬소문으로 명예를 훼손시키고 모함할 기회를 삼는다면, 이 어찌 무고(誣告)에 대한 죄가 없겠는가?” 그는 이와 관련하여 당(唐)의 측천무후와 조선조 연산군을 예로 들어 비판하였다.
간관(諫官)의 풍문에 따라 인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억울한 이들에 대한 변론이자, 객관성이 거세된 근거 없는 소문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토로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권력을 지닌 자들이라면 죄가 있어도 모면할 구실을 초래한다고도 하였다. 성호 이익의 글에는 ‘풍문’에 대한 고민과 솔루션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정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개인적인 영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혼란을 야기시킬 수도 있는 큰 문제임을 자각하게 한다.
정보에 대한 균형잡힌 안목을 길러야 할 때
소문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지만, 정작 알아야만 할 사안을 은폐시키는 역할도 한다. 또한 악의적인 소문일수록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며 쉽게 퍼져나간다. 휩쓸려서 즐기는 것은 쉽지만, 과연 이것이 진짜일까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번거롭다. 그러나 이는 해야만 하고, 필요한 일이다. 때문에 지금의 우리는 균형 잡힌 안목으로 정보를 추려낼 수 있는 감각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세계적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를 ‘소문에 대한 저항’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절차를 밟아 사실에 대해 소명하려는 적극적 저항도 있겠지만, 일방적인 한 매체만을 따르지 않고 비교한다거나 일의 전후 맥락을 살피려는 노력도 넓은 의미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층들은 제도권의 언론매체 외에도 팟캐스트 등을 통해 ‘소문’을 의심해보고자 발랄한 시도를 한다.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눈여겨 볼만 하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와 올림픽의 들뜬 열기로 공공기관의 매각문제나 녹조 문제와 같이 정작 심각한 사회적 현안들은 예각화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심을 지키며 능동적으로 소문에 대처하려 했던 성호 이익의 면모가 귀감이 되는 시점이다.
글쓴이 /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성균관대 한문학과 강사
논저 : <추재 조수삼의 연행시와 「외이죽지사」>(2008)
<조선 후기 죽지사를 통해 본 18,19세기 중인층 지식인의 타자 인식
-조선 후기 서리 출신 추재 조수삼의 작품 연구를 중심으로->(2011)
<19세기 중인층지식인의 해외체험일고>(2011)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1~3>, 전통문화연구회, 2011 (공역)
<열하기행시주; 열하를 여행하며 시를 짓다>, 휴머니스트, 2010 (공역)
소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김 영 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이른 새벽, 집 앞에 놓여 있는 신문에서 시작하여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다양한 소식과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정확성과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빠른 시간 내에 뚜렷한 근거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거쳐 퍼지는 말들은 그야말로 ‘소문(所聞)’이자 ‘풍문(風聞)’인 것이다.
요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이들 정보에 가담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을 떠나 이젠 거의 순간 이동을 하는 셈이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서부터 유명한 걸그룹의 왕따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디테일해서, 마치 스스로 목격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과연 이 가운데 객관성이 올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는가? 정보의 취사선택에 있어서 각자의 판단력이 없다면, 이는 소문에 고립되는 것일 뿐이다.
뜬소문은 솔깃하지만 진실성이 없어
속도와 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문과 그에 대한 판단 문제는 시대를 관통하는 고민이었다.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풍문으로 사람을 논하는 것(風聞論人)”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을 비평할 때에는 반드시 근거를 내세워 감히 숨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약 뜬소문으로 명예를 훼손시키고 모함할 기회를 삼는다면, 이 어찌 무고(誣告)에 대한 죄가 없겠는가?” 그는 이와 관련하여 당(唐)의 측천무후와 조선조 연산군을 예로 들어 비판하였다.
간관(諫官)의 풍문에 따라 인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억울한 이들에 대한 변론이자, 객관성이 거세된 근거 없는 소문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토로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권력을 지닌 자들이라면 죄가 있어도 모면할 구실을 초래한다고도 하였다. 성호 이익의 글에는 ‘풍문’에 대한 고민과 솔루션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정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개인적인 영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혼란을 야기시킬 수도 있는 큰 문제임을 자각하게 한다.
정보에 대한 균형잡힌 안목을 길러야 할 때
소문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지만, 정작 알아야만 할 사안을 은폐시키는 역할도 한다. 또한 악의적인 소문일수록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며 쉽게 퍼져나간다. 휩쓸려서 즐기는 것은 쉽지만, 과연 이것이 진짜일까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번거롭다. 그러나 이는 해야만 하고, 필요한 일이다. 때문에 지금의 우리는 균형 잡힌 안목으로 정보를 추려낼 수 있는 감각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세계적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를 ‘소문에 대한 저항’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절차를 밟아 사실에 대해 소명하려는 적극적 저항도 있겠지만, 일방적인 한 매체만을 따르지 않고 비교한다거나 일의 전후 맥락을 살피려는 노력도 넓은 의미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층들은 제도권의 언론매체 외에도 팟캐스트 등을 통해 ‘소문’을 의심해보고자 발랄한 시도를 한다.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눈여겨 볼만 하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와 올림픽의 들뜬 열기로 공공기관의 매각문제나 녹조 문제와 같이 정작 심각한 사회적 현안들은 예각화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심을 지키며 능동적으로 소문에 대처하려 했던 성호 이익의 면모가 귀감이 되는 시점이다.
글쓴이 /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성균관대 한문학과 강사
논저 : <추재 조수삼의 연행시와 「외이죽지사」>(2008)
<조선 후기 죽지사를 통해 본 18,19세기 중인층 지식인의 타자 인식
-조선 후기 서리 출신 추재 조수삼의 작품 연구를 중심으로->(2011)
<19세기 중인층지식인의 해외체험일고>(2011)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1~3>, 전통문화연구회, 2011 (공역)
<열하기행시주; 열하를 여행하며 시를 짓다>, 휴머니스트, 2010 (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