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문 자리가 아름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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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1:3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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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문 자리가 아름다워야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나는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자동차도 없으니,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여 볼일을 보러 다닌다. 지하철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누가 지은 문구인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광고문 구절을 볼 때마다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 한 마디는 변기를 깨끗이 사용해 달라고 당부하는 말을 우아하게 표현한 것에 그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무수히 많은 자리에 머물었다가 떠나게 되니, 우리 삶의 모든 대목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머물었던 자리를 되돌아보며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소중한 격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게는 어떤 모임에서 잠시 한담하는 자리에 앉았을 경우에도 떠난 뒤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담소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에는 대체로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떠난 뒤에 돌아서서 그 사람의 말과 행실에 대해 평가하는 말이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 더구나 상당히 세월이 지난 뒤에 그 자리에서 주고받았던 말이나 그 사람의 품격에 대해 남들과 이야기 한다면 그것이 진심에서 나오는 평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크게는 반평생을 한 직장에서 보내기도 하는데, 높은 자리에 앉았다 떠나거나 낮은 자리에 앉았다 떠나거나, 자기가 그 자리를 떠나가고 나면 다 잊혀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남은 사람이나 새로 오는 사람들 사이에 매서운 평가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남긴 훌륭한 업적이나 아름다운 행적은 향기로운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망가뜨린 과업이나 탐욕스러웠던 행적은 악취와 혐오감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오래도록 향기로운 이야기로 남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그 반대로 비난과 혐오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몰라
아무리 낮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머물었던 사람도, 그가 떠난 자리에 향기가 남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 대목에서 분명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높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사람도, 그가 떠난 자리에 악취가 남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만큼 크게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공직자가 부정으로 재물을 모아 호화롭게 살았더라도 동료들의 경멸을 받고 대중들의 혐오를 받는다면, 하늘에 부끄럽고 세상 사람들 앞에 부끄럽고 조상에 부끄럽고 자손에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정이 드러나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완강하게 잡아떼거나 기억이 없다고 뻗치는 뻔뻔한 공직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학벌에다 재능도 뛰어나서 높은 공직에까지 올라갔겠지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기본 성품인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잃은 ‘실성’(失性)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미 실성한 사람들이야 부처님도 구제할 수 없는 ‘무연중생’(無緣衆生)이니, 어찌하겠는가?
다산은 『목민심서』 12편의 마지막 편인 ‘해관’(解官)편 6조목 가운데서도 마지막 조목인 ‘유애’(遺愛)에서, 목민관으로서 가장 큰 영광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곧 목민관이 재직하는 동안 백성을 사랑한 행적이 백성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그가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사모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야말로 목민관의 가장 큰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 목민관이 떠난 뒤에도 백성들이 그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가 심어놓은 나무 하나도 사람들의 아낌을 받을 것이지만, 백성들이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가 자랑하는 업적이나 그를 칭송하는 기념비도 비웃음만 사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승만의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멀리 러시아에서 레닌과 스탈린의 그 많은 동상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떠난 자리가 진실로 두려운 줄을 알겠다.
맹자는 이상적인 정치를 행하는 지도자의 덕을 칭송하면서, “군자는 지나가는 자리가 감화되고, 간직한 마음이 신묘하게 감응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대망하는 진정한 지도자는 그가 머물고 지나가는 자리의 모든 일들이 바로잡아지고, 모든 사람들이 적재적소(適材適所)로 제자리를 얻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바르고 투명하여 소리에 따라 메아리가 울리듯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곧바로 파고들어 공감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성들의 공감을 얻어야 백성과 통치자가 한마음으로 일체가 되어 불통에서 오는 갈등과 분열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요, 앞으로 크게 뻗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모두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이 5년 후 임기를 마친 뒤에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과연 그가 머물던 자리가 아름답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으려면 백성들의 이기적 욕심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이 감동을 주고 한마음으로 통합시켜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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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나는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자동차도 없으니,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여 볼일을 보러 다닌다. 지하철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누가 지은 문구인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광고문 구절을 볼 때마다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 한 마디는 변기를 깨끗이 사용해 달라고 당부하는 말을 우아하게 표현한 것에 그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무수히 많은 자리에 머물었다가 떠나게 되니, 우리 삶의 모든 대목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머물었던 자리를 되돌아보며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소중한 격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게는 어떤 모임에서 잠시 한담하는 자리에 앉았을 경우에도 떠난 뒤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담소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에는 대체로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떠난 뒤에 돌아서서 그 사람의 말과 행실에 대해 평가하는 말이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 더구나 상당히 세월이 지난 뒤에 그 자리에서 주고받았던 말이나 그 사람의 품격에 대해 남들과 이야기 한다면 그것이 진심에서 나오는 평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크게는 반평생을 한 직장에서 보내기도 하는데, 높은 자리에 앉았다 떠나거나 낮은 자리에 앉았다 떠나거나, 자기가 그 자리를 떠나가고 나면 다 잊혀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남은 사람이나 새로 오는 사람들 사이에 매서운 평가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남긴 훌륭한 업적이나 아름다운 행적은 향기로운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망가뜨린 과업이나 탐욕스러웠던 행적은 악취와 혐오감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오래도록 향기로운 이야기로 남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그 반대로 비난과 혐오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몰라
아무리 낮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머물었던 사람도, 그가 떠난 자리에 향기가 남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 대목에서 분명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높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사람도, 그가 떠난 자리에 악취가 남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만큼 크게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공직자가 부정으로 재물을 모아 호화롭게 살았더라도 동료들의 경멸을 받고 대중들의 혐오를 받는다면, 하늘에 부끄럽고 세상 사람들 앞에 부끄럽고 조상에 부끄럽고 자손에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정이 드러나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완강하게 잡아떼거나 기억이 없다고 뻗치는 뻔뻔한 공직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학벌에다 재능도 뛰어나서 높은 공직에까지 올라갔겠지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기본 성품인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잃은 ‘실성’(失性)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미 실성한 사람들이야 부처님도 구제할 수 없는 ‘무연중생’(無緣衆生)이니, 어찌하겠는가?
다산은 『목민심서』 12편의 마지막 편인 ‘해관’(解官)편 6조목 가운데서도 마지막 조목인 ‘유애’(遺愛)에서, 목민관으로서 가장 큰 영광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곧 목민관이 재직하는 동안 백성을 사랑한 행적이 백성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그가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사모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야말로 목민관의 가장 큰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 목민관이 떠난 뒤에도 백성들이 그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가 심어놓은 나무 하나도 사람들의 아낌을 받을 것이지만, 백성들이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가 자랑하는 업적이나 그를 칭송하는 기념비도 비웃음만 사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승만의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멀리 러시아에서 레닌과 스탈린의 그 많은 동상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떠난 자리가 진실로 두려운 줄을 알겠다.
맹자는 이상적인 정치를 행하는 지도자의 덕을 칭송하면서, “군자는 지나가는 자리가 감화되고, 간직한 마음이 신묘하게 감응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대망하는 진정한 지도자는 그가 머물고 지나가는 자리의 모든 일들이 바로잡아지고, 모든 사람들이 적재적소(適材適所)로 제자리를 얻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바르고 투명하여 소리에 따라 메아리가 울리듯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곧바로 파고들어 공감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성들의 공감을 얻어야 백성과 통치자가 한마음으로 일체가 되어 불통에서 오는 갈등과 분열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요, 앞으로 크게 뻗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모두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이 5년 후 임기를 마친 뒤에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과연 그가 머물던 자리가 아름답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으려면 백성들의 이기적 욕심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이 감동을 주고 한마음으로 통합시켜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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