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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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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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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내리는데


엊그제 춘분이라 밤이 무척 짧아지더니 오늘은 벌써 청명(淸明)에 한식(寒食)입니다. 정말로 좋은 계절이라 개나리가 노랗게 피었고 벚꽃이나 진달래도 그냥 마구 피어나고 있습니다.

“청명 시절에 가랑비 내리는데 / 길 위의 나그네들 혼조차 잃겠네(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라던 옛 시가 절로 읊어지는 계절입니다. 계절은 속이지 못한다고 금년의 청명에도 이슬비이자 가랑비가 잊지 않고 내리고 있습니다.



새벽비 보슬보슬 담배 심기 알맞기에
담배 모종 옮겨다가 울밑에 심었다네.
올봄에는 특별하게 영양(英陽)의 법 배워다가
금사주(金絲酒) 사다 마시며 일 년을 보내야지.
(曉雨廉纖合種煙 煙苗移揷小籬邊
 今春別學英陽法 要販金絲度一年)<長 農歌>

이슬비 내리자 담배 심기에 게으르지 않던 농부들의 모습과 마음을 제대로 형상화 했던 시입니다. 그 무렵에도 경상도의 영양 고을에는 담배가 유명해서 영양 사람들의 담배심는 법을 배워다가 심어야 제 맛이 나는 담배가 생산된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도 밖에는 청명시절의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습니다. 음력 2월에 경상도 장기현으로 귀양살이를 떠난 다산은 봄이 되자 농촌의 풍경을 멋지게 묘사한 농가(農歌)를 읊었습니다.


새로 돋은 호박 순 토실한 떡잎
밤 사이에 넝쿨 뻗어 사립문에 걸렸네.
평생토록 수박일랑 심지 않는 것은
고약한 아전놈들과 시비가 두려워서라네.

같은 농가에 나오는 시입니다. 이슬비 내리는 봄날이야 아름답지만, 수익성 높은 수박을 심지 못하는 농부의 아픔이 또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맛있는 수박이 익어가면 의당 아전놈들 찾아와 값도 없이 그냥 수박을 따달라는 바람에 시비가 일어날까 봐, 수박은 심지 못하는 압제에 시달리는 농민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달뜨는 밤, 안개 낀 아침, 노을 지는 저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다산의 시에는 언제나 그런 모든 것의 주체인 인간의 모습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항상 아픈 백성이 있었으니, 백성과 나라를 못 잊던 다산의 마음이 서려 있습니다.

다산 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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