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또는 <요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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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0:5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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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또는「요코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한국의 김군자(80) 이용우(79) 할머니와, 네덜란드 출신 얀 루푸 오헤른 할머니(84)가 마침내 미국 의회의 ‘위안부 청문회’에 나섰다. 하원에 이미 상정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 요구 결의안에 따라 이루어진 자리다.(15일, 현지 시간)
산 세월의 최후 진술인 양, 자신들의 존재 사실을 온 세상에 고하는 기회가 모처럼 다행스럽다. 참담한 역사적 진실에 가감없이 육박하는 계기로 다시없다. 증언에 동참한 오헤른 할머니를 특히 괄목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는 아시아계가 거진 다였기 때문이다.
미 의회 ‘위안부 청문회’, 서양 여성 피해자도 증언 나서
강제로 징발되거나 수용 당한 과정은 다를지언정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짐승의 시간을 보내기는 매일반이었던 처지에 굳이 인종을 가릴 셈인가. 퉁을 놓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서양 인심의 기미는 많이 진전된 글로벌시대와 상관없이 아직 그만한 낯가림에 익숙한 편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했느냐에 따라 설득력이 오락가락 할 수도 있는 까닭에, 서양 여성으로부터 나도 그런 만행을 당했다는 소리를 직접 들은 미국사회의 충격이나 반응이 궁금하다.
미국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시도는 이전에도 두세 차례 더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 사과 요구를 받은 일본이 거물급 로비스트를 앞세워 그때그때 막은 탓이다.
지난달 말의 결의안 제출에 이은 미국 의회사상 최초의 위안부 청문회를 그러므로 높이 평가해야겠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들인 한인단체 봉사자들의 공력이 실로 대단했다고 듣는다.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지에 사는 교포들의 편지 보내기를 비롯한 호소와 접촉이 해당지역 출신 연방 하원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번 ‘거사’를 기어이 성사시켰다. 유권자와 표를 의식하는 의원 간의 협조 체제 덕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한인사회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에서 결과적으로 기분이 좋다.
사단의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미국서는 또 2차대전 패망 당시의 일본인 가족이 한국 땅에서 겪은 이야기가 말썽을 빚었다. 미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자전적 소설「요코 이야기」가 그거다.
가와시마 왓킨스가 1986년에 낸 책의 원재는「대나무숲 저 멀리서」(Far from the Bamboo Grove)이고,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요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스토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작자인 11살의 요코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1945년 7~8월 동안 함경북도 나남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겪은 일들을 적었다. 분량 역시 적어, 내가 읽은 번역본은 완독에 세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간간이 나타나는 가해자 한국인, 인정 많은 사람도 나오지만 패전 국민에 대한 한국인의 성폭행을 간접화법으로 묘사한다든가, 미국책 표지에 쓰인 ‘목숨을 걸고 한국을 도망쳐 나온 실제 이야기’ 등이 끝내 문제를 일으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미국 어린이들의 영어 교재로, 심지어는 서울 외국인학교의 인문분야 교재로도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착한 일본인 나쁜 한국인’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어머니한테서 ‘이건 아니다’는 귀띔을 들은 미국 사립학교 7학년 어린이 보은양은, 그래서 1주일간 등교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 책이 자기 학교 영어 교재로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귀여운 반발과 함께 교포들 사이에도 차츰 시정운동이 벌어져 적잖은 학교가 교재목록에서 뺐다는 소식이 다행스럽다.
앞에서 말한 일본군의 포악과는 비교하기조차 구차스럽다. 긴긴 식민지를 견딘 사연 또한 나열할 겨를이 없다.
다시 생각하는 글과 책의 생명력
하나마나 한 소리 그만 두고,「요코 이야기」보다 40년 가량 앞서 나왔던 후지하라 데이의「내가 넘은 38선」을 상기하고 싶다. 일본 패망과 함께 남편을 만주에 놔둔 채, 여섯 살, 세 살,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갓난아이를 업고 끌며 만주 장춘을 출발 일본으로 간 주부의 수기가 절절하게 슬펐다.
이 책 또한 원제는「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였는데. 우리말로 번역되자마자 히트를 쳤다. 일본서의 베스트셀러는 그렇다 치자. 그들의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몇 년 밖에 안 되는 마당에, 더구나 독서 분위기가 자리잡기엔 너무 어수선한 판국에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었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땅에서 지낸 피난 생활이다. 한국인의 박해는 보이지 않는다.
섣부른 정치적 해석을 뺀 미운 정 고운 정의 인간 드라마가 우리 독자들의 연민을 그토록 샀다. 고생?「요코 이야기」는 저리 가랄 지경으로 혹독했다. 그 책은 지금도 일본서 나오고 있다. 글과 책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오고 중심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글쓴이 / 최일남
· 소설가
·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 등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한국의 김군자(80) 이용우(79) 할머니와, 네덜란드 출신 얀 루푸 오헤른 할머니(84)가 마침내 미국 의회의 ‘위안부 청문회’에 나섰다. 하원에 이미 상정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 요구 결의안에 따라 이루어진 자리다.(15일, 현지 시간)
산 세월의 최후 진술인 양, 자신들의 존재 사실을 온 세상에 고하는 기회가 모처럼 다행스럽다. 참담한 역사적 진실에 가감없이 육박하는 계기로 다시없다. 증언에 동참한 오헤른 할머니를 특히 괄목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는 아시아계가 거진 다였기 때문이다.
미 의회 ‘위안부 청문회’, 서양 여성 피해자도 증언 나서
강제로 징발되거나 수용 당한 과정은 다를지언정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짐승의 시간을 보내기는 매일반이었던 처지에 굳이 인종을 가릴 셈인가. 퉁을 놓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서양 인심의 기미는 많이 진전된 글로벌시대와 상관없이 아직 그만한 낯가림에 익숙한 편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했느냐에 따라 설득력이 오락가락 할 수도 있는 까닭에, 서양 여성으로부터 나도 그런 만행을 당했다는 소리를 직접 들은 미국사회의 충격이나 반응이 궁금하다.
미국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시도는 이전에도 두세 차례 더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 사과 요구를 받은 일본이 거물급 로비스트를 앞세워 그때그때 막은 탓이다.
지난달 말의 결의안 제출에 이은 미국 의회사상 최초의 위안부 청문회를 그러므로 높이 평가해야겠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들인 한인단체 봉사자들의 공력이 실로 대단했다고 듣는다.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지에 사는 교포들의 편지 보내기를 비롯한 호소와 접촉이 해당지역 출신 연방 하원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번 ‘거사’를 기어이 성사시켰다. 유권자와 표를 의식하는 의원 간의 협조 체제 덕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한인사회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에서 결과적으로 기분이 좋다.
사단의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미국서는 또 2차대전 패망 당시의 일본인 가족이 한국 땅에서 겪은 이야기가 말썽을 빚었다. 미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자전적 소설「요코 이야기」가 그거다.
가와시마 왓킨스가 1986년에 낸 책의 원재는「대나무숲 저 멀리서」(Far from the Bamboo Grove)이고,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요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스토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작자인 11살의 요코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1945년 7~8월 동안 함경북도 나남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겪은 일들을 적었다. 분량 역시 적어, 내가 읽은 번역본은 완독에 세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간간이 나타나는 가해자 한국인, 인정 많은 사람도 나오지만 패전 국민에 대한 한국인의 성폭행을 간접화법으로 묘사한다든가, 미국책 표지에 쓰인 ‘목숨을 걸고 한국을 도망쳐 나온 실제 이야기’ 등이 끝내 문제를 일으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미국 어린이들의 영어 교재로, 심지어는 서울 외국인학교의 인문분야 교재로도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착한 일본인 나쁜 한국인’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어머니한테서 ‘이건 아니다’는 귀띔을 들은 미국 사립학교 7학년 어린이 보은양은, 그래서 1주일간 등교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 책이 자기 학교 영어 교재로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귀여운 반발과 함께 교포들 사이에도 차츰 시정운동이 벌어져 적잖은 학교가 교재목록에서 뺐다는 소식이 다행스럽다.
앞에서 말한 일본군의 포악과는 비교하기조차 구차스럽다. 긴긴 식민지를 견딘 사연 또한 나열할 겨를이 없다.
다시 생각하는 글과 책의 생명력
하나마나 한 소리 그만 두고,「요코 이야기」보다 40년 가량 앞서 나왔던 후지하라 데이의「내가 넘은 38선」을 상기하고 싶다. 일본 패망과 함께 남편을 만주에 놔둔 채, 여섯 살, 세 살,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갓난아이를 업고 끌며 만주 장춘을 출발 일본으로 간 주부의 수기가 절절하게 슬펐다.
이 책 또한 원제는「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였는데. 우리말로 번역되자마자 히트를 쳤다. 일본서의 베스트셀러는 그렇다 치자. 그들의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몇 년 밖에 안 되는 마당에, 더구나 독서 분위기가 자리잡기엔 너무 어수선한 판국에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었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땅에서 지낸 피난 생활이다. 한국인의 박해는 보이지 않는다.
섣부른 정치적 해석을 뺀 미운 정 고운 정의 인간 드라마가 우리 독자들의 연민을 그토록 샀다. 고생?「요코 이야기」는 저리 가랄 지경으로 혹독했다. 그 책은 지금도 일본서 나오고 있다. 글과 책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오고 중심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글쓴이 / 최일남
· 소설가
·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