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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대학교의 김진아 교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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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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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샘 홈피(bkhwang.com)에서 퍼온글

김진아는 독일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 뮨스터에서 활약하는 음악학자인데, 곧 훔볼트대학 교수로 부임한다. 그의 박사논문이 흥미로워 한국어 요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보내주어 여기 싣는다. 김진아는 독일 최대의 음악사전 MGG에 황병기 항목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1770년과 1830년 사이에 쓰인 교향곡의 실제
-안톤 에벨을 중심으로 파악해본다

우리는 1770년과 1830년 사이에 쓰인 수많은 음악작품들에서 이전에 완성된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 새로운 특징을 제대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에 기존하는 음악이론이나 음악미학을 토대로 하는 연구방법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이 논문은 원래 두 가지 의문에서 출발했다. 첫째는, 이 당시에 쓰인 작품들에 새로운 음악양식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요소들은 과연 무엇일까였다. 그리고 둘째는, 이러한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방법은 어떤 것일까 하는 연구방법론적인 문제의식에서 온 의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작품들이란, ‘비엔나 고전주의’라는 용어와 함께 우리에게 알려진 하이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대의 다른 수많은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포함한다. 이 작품들은 완성된 이후 몇 십 년 동안은 높은 가치평가를 받았으나, 그 이후에 잊혀지게 되었다. 이 논문을 쓰게 된 까닭은, 어떤 원인과 경로로 이 작품들이 잊혀지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의 해답을 - 그들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 찾아보고자 하는 필자의 의도와도 관련이 있다.
이런 의문점들을 풀기 위해 이 논문의 주요 연구대상이 된 것은 1770년과 1830년 사이에 쓰인 교향곡들 전반이며, 그 중에 특히 에벨(Anton Eberl, 1765-1807)이란 작곡가의 작품들이다. 그의 교향곡은 총 5개이다. 세 개의 초기 교향곡(w.o.n. 5, 6 und 7)들은 1783년과 1785년 사이에 완성되었으니, 대략 하이든의 중반기 교향곡들과 모차르트의 중기와 후기 교향곡들 사이에 쓰였다. 또한 그의 두개의 후기 교향곡들은 대략 1803년과 1804년에 쓰인 것으로 베토벤의 첫 번째 세 개의 교향곡(No. 1-3)과 유사한 시기에 완성되었다. 에벨은 18세기 말엽에는 특히 모차르트의 가장 위대한 후계자로서 그리고 19세기 초에는 베토벤의 최고 경쟁자로 간주될 정도로 대단한 평가를 받은 작곡가였다. 하지만 베토벤이 19세기의 순환 속에서 단독적으로 영웅화됨에 따라 에벨의 작품들은 점차 잊혀져갔다. 베토벤이 영웅화된 이유는 에벨이 잊혀진 이유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 당시의 음악미학적이자 음악이론적이고 음악비평사적인 사고가 결국 한 작곡가를 영웅화시키고, 반면 에벨과 같은 다른 수많은 작곡가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일단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이 논문의 첫 장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두 단락은 1770년과 1790년 사이에 쓰인 교향곡들을 연구의 주요대상으로 삼는다. 첫 번째 단락이 다루는 주제는 교향곡의 3개 또는 4개 악장이 어우러져 (주제나 모티브의 단일화된 제시를 통해) 구조적으로 만들어내는 ‘치쿨루스의 일체성’(Cyclic unity)이라는 현상이다. 20세기의 음악학자들은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작품들에 간간이 나타나는 이 현상에 주목하며, 왜 이 현상이 생겼는지에 관해 여러 방면에서 수많은 주장을 해왔으나, 지금까지도 이 음악현상이 생긴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한 실정이다. 우선 필자의 논문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단지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몇몇 작품들에만 제한되어 나타나지 않음을 (18세기 후기에 쓰인 수많은 음악의 예를 들어) 분명히 하고, 더 나아가서 18세기 다수의 이론가들이 ‘치쿨루스의 일체성’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음을 문헌연구를 통해 지적하고, 또한 이 현상이 생긴 이유는 각각의 작품을 보다 더 긴장감 있게 극적으로 창작하려는 당시대 작곡가들의 노력과 관련됨을 밝힌다. 이와 더불어 오페라의 서곡과 연관성이 보이는 교향곡들에 이런 현상이 주도한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서, 오페라 서곡이 기악곡, 특히 교향곡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강조한다.

두 번째 단락의 주요관심사는 소나타 악장 형식에 대한 현존하는 음악이론들이 갖는 문제점을 밝히는 것인데, 우선 이 이론들이 19세기에 베토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완성된 이론을 토대로 함을 지적한다. 여기서 다루는 두개의 질문은: 첫째, 어떤 사항들을 18세기 후기의 이론가들이 (19세기 이론가들과는 달리) 소나타 악장 형식의 법칙으로 내세우는가? 둘째, 어떤 요소들이 당대 작곡가들로부터 소나타 악장 형식의 법칙으로 이해되었는가이다. 이 두 번째 질문의 해답은 독창적인 소나타 악장 형식을 가진 (1770년과 1790년 사이에 쓰인) 곡들의 분석을 통해 찾게 되는데, 이 곡들의 특징을 이루는 음악적 요소들은 이론가들이 내세우는 소나타법칙에 어긋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필자의 연구를 통해 드러나는 다른 한 가지 사항은, 주로 베토벤의 작품들에 고정된 이론가들의 지극히 편중된 시각이 베토벤의 소나타 악장 형식의 곡들을 마치 예술음악의 전부인 양 수용하게 했고, 반면 베토벤과는 다른 음악양식을 가진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를 거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의 두 번째 장에서는 19세기 초에 생겼으나, 이제까지 음악학에서 다루지 않은 음악현상들을 고찰해 본다. 19세기 초는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현대음악’의 대표자로 인정을 받아 많은 이들의 신망이 되고, 또 베토벤이 동료 작곡가뿐만이 아니라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대항하여 자기의 음악양식을 끝내 관철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또한 이 때에 음악비평과 음악미학에서는 음악의 본질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쓰인 교향곡에는 양식의 뚜렷한 변화를 볼 수 있다. 필자의 논문 첫 단락에서는, 어떻게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이 교향곡 전반의 견본으로 수용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음악미학과 음악비평의 문헌연구를 통해) 설명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이런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이 견본화되는 과정을 통해 생긴 결과를 서술하는데,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동료 작곡가들이 겪어야만 했던 운명적인 실제상황이다. 이들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모방자로서 당대의 비평가와 이론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고, 아니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후계자로서 칭송을 받으면서 베토벤의 경쟁자로 대두되기도 하는데, 에벨은 이런 작곡가들 중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에벨의 후기 교향곡(op. 33)을 실제 예로 들어서, 이 곡에 반영된 하이든과 모차르트 양식을 밝히고, 베토벤의 음악양식과는 다른 면모를 분석해 보며, 더 나아가서 어떤 이유로 이 곡이 19세기 초의 청취자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또한 어떤 이유로 1830년경부터 점차 잊혀지게 되었는지에 관해 분석해본다. 연구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에벨의 곡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단순히 모방만 하지는 않는 작품이기에 당대 이런 식의 작품을 선호하는 청취자들에게 호평을 받을 수 있었고, 19세기의 순환 속에서 베토벤의 음악양식이 예술음악의 정수로 간주되면서 청중의 관심을 잃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세 번째 장은 19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음악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분야인 음악해석학(Musical hermetic)을 다룬다. 왜 이 분야가 음악학계에서 백여 년 동안 줄곧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해 음악이론적으로 - 몇 가지의 음악의 예를 통해 - 설명해 보는 첫 번째 단락에 이어, 두 번째 단락은 이 분야와 관련된 음악미학과 음악비평사의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가지 사항들을 서술한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1800년경에 음악이란 것은 음소리를 내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예를 들자면, 인간감성이나 소설의 장면 또는 목가적인 정경)를 표현하고 묘사해야 한다는 견해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다음 단락에서는 1800년과 1830년 사이에 쓰인 여러 작품들을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곡분석 방식에서 벗어나) 그 당시 작품분석하는 방법과 시각에 맞춰서 새로이 분석해 보는 시도를 한다. 이 장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위에 언급한 1800년경에 형성된 음악미학자나 음악비평가들의 견해와 19세기 초에 쓰인 작품들에 나타나는 음악양식의 변화는 상호연관성이 있다. 당대 여러 작곡가들의 실험적 시도로 이루어진 음악양식의 변화는 작곡사적인 면에서 볼 때, 사실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들의 업적은 19세기 후반기의 음악이론가, 미학자 그리고 비평가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 그 까닭은, 음악이 표현하는 내용적인 면보다는 구성형식에 관심을 두는 그들의 경향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이것은 또한 비엔나 고전주의, 특히 베토벤의 음악에 고정된 시각과도 관계된다. 이런 19세기 후반기부터 정착된 음악계의 주된 흐름은 현재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고 계속되는 실정이다.

이제까지의 서술이 말해주듯이, 음악사는 1770년과 1830년 사이에 작품활동을 했던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실험적 시도에 의해 큰 변천을 하게 되었다. 그들 음악의 특징은, 지금까지 음악학계에서 관례가 되어버린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음악에 지극히 편중된 연구방법만으론 제대로 분석파악 되기가 어렵다. 에벨과 같은 (현재 우리에게 잊혀진) 작곡가들의 음악들은, 당시대의 사고와 견해에 초점을 둔 새로운 연구방법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고 또한 제대로 평가될 수 있음이 명료하다.

2006년 1월 4일, 독일 뮨스터에서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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