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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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0:5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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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혁 명
이해식 (영남대 작곡과 교수)
1999년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포항 호미곶에 있는 힘이 넘치는 왼손. 상생(相生)의 의미로 바다에는 마주 보는 오른손이 있다. 2008. 6. 8. Sony DSC- V1 녹화/김초희.
나는 사흘 동안 왼손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잡았더니 갑자기 왼손 엄지 근육의 수의성(隨意性)이 떨어지고 관절에서 똑똑 소리가 났다. 그리하여 정형외과에서 렌트겐(Roentgen) 촬영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경과가 좋아지기는커녕 날씨에 따라서 통증만 더 심해질 따름이어서 마침내 수술 단계에 이르렀다.
수술은 활차(滑車 pulley) 절개라는 아주 간단한, 일종의 인대 수술이었다. 이런 증상은 무리한 왼손 마우스 작업에서 온 게 아니라 노화현상이라는 의사의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엄지로 하는 세밀한 작업은 물론 수술이 끝나고 완치될 때까지 근신(謹身)하는 동안의 불편함이었다.
나는 몸의 균형을 위해서 일찍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으로 이양했는데, 예를 들면 오른손에 시계차기, 허리띠 오른쪽으로 매기,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기, 왼손으로 돈 세기, 운전할 때 왼발로 제동 페달 밟기 등이다.
내 왼손의 마우스 작업을 보는 사람마다 왼손잡이냐고 묻는다. 이제 왼손의 일들을 다시 오른손으로 해야 하지만 그래도 무의식 중에 왼손이 하는 일이 많아서 그 불편함이 여간 아니었다.
왼손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But when you give alms,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so that your alms may be in secret)는 ????신약 성경???? 「마태복음」 제6장 3~4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좋은 일을 할 때 미리 생색내거나 자랑하지 말고, 어떤 일이 끝난 뒤에도 공치사(功致辭 self-praise)를 삼가라는 뜻으로 여긴다. 베풀음(布)의 대가는 오직 하늘나라에만 기록되기 때문이다.
피아노도 왼손 passage가 많은 F. 쇼팽(1810~1849)의 연습곡 12번 「혁명」(revolution)을 열심히 연습한다. 「혁명」은 처음에 C minor dominant로 시작해서 여러 번의 전조 끝에 F minor dominant로 반종지(半終止 half cadence)한다. 이 반종지는 C minor의 picardy 3rd이면서 완전 종지(完全終止 authentic cadence)이니 전조와 활성적인 dominant에 의한 이중적인 종지 구조이다.
5도권(circle of fifth)에서 대개의 전조는 sharp(♯)을 향하여 완전5도씩 시계 방향으로(natural) 상승하거나 flat(♭)을 향하여 왼쪽으로(reverse) 하강한다. 여기서 오른쪽을 right, 왼쪽을 left라 하지 않고 각각 natural과 reverse라 했음은 이들이 춤과 관련한 회전(turning) 용어이기 때문이다. 전조도 일면 회전과 회귀(recur)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쇼팽이 「혁명」 후반에서 왼쪽으로 sub dominant 조성을 택함은 전조와 종지에서 변격(變格 plagal)을 의도함이다. 변격은 엇(旕)나가면서 강력한 힘(energy)이 생긴다. 개신교 찬송가 끝의 아멘(Amen cadence)이 바로 전형적인 변격종지(plagal cadence)임은 깊은 신앙심에서 강력한 힘이 작용함이다. 우리 나라의 민속음악은 엇붙임(rhythm group)에서 장단의 힘이 솟는다.
쇼팽은 그의 제자 폰 렌츠(1809~1883)에게 “왼손이 지휘자이다. 네가 의도한 것은 오른손으로 하라”고 설명했다(안미자). 이로 보면 「혁명」은 sub dominant인 왼쪽 방향으로 전조하고 왼손에 많은 술어(述語)를 배치하고 오른손에 강력한 동사, 즉 지휘자를 배치했음은 작품 상의 <혁명>을 의도함이다. 이러한 「혁명」의 왼손 passage가 나의 왼손 근육을 분명하게 이완(relaxation)시키니 이게 바로 쇼팽 「혁명」을 통한 내 몸 안의 <혁명>이라 하겠다.
동양(중국)에서는 左(좌)는 屮(왼손좌)+工(장인공)인데 이것은 목수가 왼손에 자(尺, scale)를 들고 ‘일을 돕는다’는 의미이다. 右(우)는 又(또우)+口(입구)인데 이것은 오른손과 입(mouth)으로 ‘남의 일을 돕는’다는 의미이다. 좌우 두 손이 서로 상생과 보완의 관계여서 오른손이 왼손을 얻으면 외롭지 않다(김언종). 그래서 왼손을 도와주는 손(左助)이라고 한다(염정삼).
국악에서 어떤 소리의 여음(餘音)은 음의 공간이며 이 공간음을 농현(弄絃) 또는 전성(轉聲)함으로써 국악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왼손에서 빚어지는 이 생명을 얻음이 곧 득음(得音)이요 지음(知音)이다. 파가니니(1782~1840)가 연주여행을 하면 호텔 객실 옆방은 덩달아서 예약되었다(박민종). 그는 평소에 그의 특이하고 부드러운 왼손 득음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그의 기묘한 소리만이라도 듣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피아노곡집 「전람회의 그림」 가운데 <옛 성>은 처음 도입부를 왼손으로 시작하면서 끝까지 왼손에서 G♯음이 마치 드론(drone or bourdon)처럼 지속적으로 울린다. 이 울림을 알면(知音) <옛 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는 또 쇼팽 「혁명」을 통하여 내 몸을 혁명하고자 피아노 앞에 앉아서 왼손이 중용과 창조의 근원임은 확인한다.
참고 문헌
Franz Farga(朴敏鍾 譯), 사랑과 선율의 噴火山 ????파가니니????, 서울: 乙支出版社, 1979.
F. Dorian(안미자 역), ????음악 연주사????,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8(2판).
김언종, ????한자의 뿌리???? 2, 서울: 문학동네, 2002.
신약성경(New Testament).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ムソルグスキ-????展覽會の繪????, 東京: 全音樂譜出版社.
????世界音樂大全集???? 器樂篇第18卷 ツヨパン ピアノ曲集Ⅰ, 音樂之友社: 東京: 昭和30年(1955).
이해식 (영남대 작곡과 교수)
1999년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포항 호미곶에 있는 힘이 넘치는 왼손. 상생(相生)의 의미로 바다에는 마주 보는 오른손이 있다. 2008. 6. 8. Sony DSC- V1 녹화/김초희.
나는 사흘 동안 왼손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잡았더니 갑자기 왼손 엄지 근육의 수의성(隨意性)이 떨어지고 관절에서 똑똑 소리가 났다. 그리하여 정형외과에서 렌트겐(Roentgen) 촬영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경과가 좋아지기는커녕 날씨에 따라서 통증만 더 심해질 따름이어서 마침내 수술 단계에 이르렀다.
수술은 활차(滑車 pulley) 절개라는 아주 간단한, 일종의 인대 수술이었다. 이런 증상은 무리한 왼손 마우스 작업에서 온 게 아니라 노화현상이라는 의사의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엄지로 하는 세밀한 작업은 물론 수술이 끝나고 완치될 때까지 근신(謹身)하는 동안의 불편함이었다.
나는 몸의 균형을 위해서 일찍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으로 이양했는데, 예를 들면 오른손에 시계차기, 허리띠 오른쪽으로 매기,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기, 왼손으로 돈 세기, 운전할 때 왼발로 제동 페달 밟기 등이다.
내 왼손의 마우스 작업을 보는 사람마다 왼손잡이냐고 묻는다. 이제 왼손의 일들을 다시 오른손으로 해야 하지만 그래도 무의식 중에 왼손이 하는 일이 많아서 그 불편함이 여간 아니었다.
왼손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But when you give alms,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so that your alms may be in secret)는 ????신약 성경???? 「마태복음」 제6장 3~4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좋은 일을 할 때 미리 생색내거나 자랑하지 말고, 어떤 일이 끝난 뒤에도 공치사(功致辭 self-praise)를 삼가라는 뜻으로 여긴다. 베풀음(布)의 대가는 오직 하늘나라에만 기록되기 때문이다.
피아노도 왼손 passage가 많은 F. 쇼팽(1810~1849)의 연습곡 12번 「혁명」(revolution)을 열심히 연습한다. 「혁명」은 처음에 C minor dominant로 시작해서 여러 번의 전조 끝에 F minor dominant로 반종지(半終止 half cadence)한다. 이 반종지는 C minor의 picardy 3rd이면서 완전 종지(完全終止 authentic cadence)이니 전조와 활성적인 dominant에 의한 이중적인 종지 구조이다.
5도권(circle of fifth)에서 대개의 전조는 sharp(♯)을 향하여 완전5도씩 시계 방향으로(natural) 상승하거나 flat(♭)을 향하여 왼쪽으로(reverse) 하강한다. 여기서 오른쪽을 right, 왼쪽을 left라 하지 않고 각각 natural과 reverse라 했음은 이들이 춤과 관련한 회전(turning) 용어이기 때문이다. 전조도 일면 회전과 회귀(recur)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쇼팽이 「혁명」 후반에서 왼쪽으로 sub dominant 조성을 택함은 전조와 종지에서 변격(變格 plagal)을 의도함이다. 변격은 엇(旕)나가면서 강력한 힘(energy)이 생긴다. 개신교 찬송가 끝의 아멘(Amen cadence)이 바로 전형적인 변격종지(plagal cadence)임은 깊은 신앙심에서 강력한 힘이 작용함이다. 우리 나라의 민속음악은 엇붙임(rhythm group)에서 장단의 힘이 솟는다.
쇼팽은 그의 제자 폰 렌츠(1809~1883)에게 “왼손이 지휘자이다. 네가 의도한 것은 오른손으로 하라”고 설명했다(안미자). 이로 보면 「혁명」은 sub dominant인 왼쪽 방향으로 전조하고 왼손에 많은 술어(述語)를 배치하고 오른손에 강력한 동사, 즉 지휘자를 배치했음은 작품 상의 <혁명>을 의도함이다. 이러한 「혁명」의 왼손 passage가 나의 왼손 근육을 분명하게 이완(relaxation)시키니 이게 바로 쇼팽 「혁명」을 통한 내 몸 안의 <혁명>이라 하겠다.
동양(중국)에서는 左(좌)는 屮(왼손좌)+工(장인공)인데 이것은 목수가 왼손에 자(尺, scale)를 들고 ‘일을 돕는다’는 의미이다. 右(우)는 又(또우)+口(입구)인데 이것은 오른손과 입(mouth)으로 ‘남의 일을 돕는’다는 의미이다. 좌우 두 손이 서로 상생과 보완의 관계여서 오른손이 왼손을 얻으면 외롭지 않다(김언종). 그래서 왼손을 도와주는 손(左助)이라고 한다(염정삼).
국악에서 어떤 소리의 여음(餘音)은 음의 공간이며 이 공간음을 농현(弄絃) 또는 전성(轉聲)함으로써 국악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왼손에서 빚어지는 이 생명을 얻음이 곧 득음(得音)이요 지음(知音)이다. 파가니니(1782~1840)가 연주여행을 하면 호텔 객실 옆방은 덩달아서 예약되었다(박민종). 그는 평소에 그의 특이하고 부드러운 왼손 득음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그의 기묘한 소리만이라도 듣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피아노곡집 「전람회의 그림」 가운데 <옛 성>은 처음 도입부를 왼손으로 시작하면서 끝까지 왼손에서 G♯음이 마치 드론(drone or bourdon)처럼 지속적으로 울린다. 이 울림을 알면(知音) <옛 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는 또 쇼팽 「혁명」을 통하여 내 몸을 혁명하고자 피아노 앞에 앉아서 왼손이 중용과 창조의 근원임은 확인한다.
참고 문헌
Franz Farga(朴敏鍾 譯), 사랑과 선율의 噴火山 ????파가니니????, 서울: 乙支出版社, 1979.
F. Dorian(안미자 역), ????음악 연주사????,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8(2판).
김언종, ????한자의 뿌리???? 2, 서울: 문학동네, 2002.
신약성경(New Testament).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ムソルグスキ-????展覽會の繪????, 東京: 全音樂譜出版社.
????世界音樂大全集???? 器樂篇第18卷 ツヨパン ピアノ曲集Ⅰ, 音樂之友社: 東京: 昭和30年(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