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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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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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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사회
금 장 태(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공자는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묻자, “식량을 넉넉하게 하고, 군비를 충실하게 하며, 백성이 신뢰하게 하는 것이다”(《논어(論語)》)라 하여, 정치의 세 가지 기본과제로서 요즈음 말로 경제와 국방과 사회통합을 제시하였던 일이 있다. 이때 자공은 스승에게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무엇부터 버릴 것인지 다시 물었는데, 공자는 먼저 군비를 버릴 수 있고, 다음에 식량을 버릴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의 신뢰’가 최종적 근거가 되고 있음을 역설하였다. 한 나라의 ‘백성’이라면 그 나라의 법질서와 통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결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성이 신뢰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면 ‘백성’이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송나라의 사마광(司馬光)도 “나라는 백성에 의해 보존되고, 백성은 신뢰에 의해 보존된다”(《자치통감(資治通鑑)》)고 하였다. 신뢰가 없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도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면 민심이 안정되고, 민심이 안정되면 나라도 안정될 수 있다. 민심이 불안하고 동요하는데 나라를 발전시키겠다고 무슨 거창한 정책을 펼치려 한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나라와 국민은....신뢰감이 언제부터 깨진 걸까?

국민이 정치현실에 절망하여 모두 기회만 있으면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사회라면 나라는 있어도 나라꼴이 아니요, 백성은 있어도 애국심이 없으니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백성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은 선거철이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 목숨 바쳐 헌신할 듯이 하다가, 당선만 되면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버려두고 당리당략만 따르거나 사리사욕에 빠져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이렇게 하고서야 백성의 신뢰를 받기 원한다면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백성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공자는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공경하고 신중히 일을 처리하여 백성이 신임하게 할 것’(『논어』)을 강조하였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공경하고 신중히 일을 처리한다’(敬事)는 말에 대해, “그 시작에서 끝마침까지를 생각하고, 그 도중에 발생하게 되는 폐단을 헤아려, 막히거나 흔들림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한다면 백성들이 신임할 것이다”(《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라 해석하였다. 전체의 계획을 이치에 맞게 수립하고, 실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문제점을 치밀하게 점검하며, 중간에 장애나 동요가 없도록 시행할 수 있어야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둘러보아도 국가적 큰 사업을 추진하면서 졸속한 계획으로 착수하거나 지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여, 시작부터 시비가 많아 국론이 분열될 지경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고, 사방에서 저항을 받아 계획을 변경하고 시행을 연기하다가 엄청난 비용만 허비하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러고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믿음이 가겠는가?


신뢰는 말에서 나오고, 말에 믿음이 사라지면서
                                    우리사회의 불신의 병은 깊어져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번 겪어보면서 믿음이 점점 두터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을 싹트게 하는 출발점은 무엇인가? 신뢰의 ‘신’(信)이라는 글자는 사람(人)의 말(言)을 뜻한다. 그 사람이 한번 입에 올린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 믿음이 생기게 되고, 그의 말이 거듭하여 사실로 드러나면 믿음이 점점 굳어진다. 그런데 말과 행동이 다르고 말과 실지가 다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한두 번 속다보면 믿음이 사라지면서 의심만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양치기가 거짓말을 한 두 번 하면 나중에는 참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 정치인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그 말이 정직하고 또 자기 말을 실행하며 책임지는 것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신뢰가 있으면 서로 마음이 소통하여 친밀한 사이가 된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서로 경계하고 쉽게 오해가 일어나 서로 갈등을 일으켜 대립과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조선 초에 서울의 도성을 처음 설계한 사람은 동서남북의 사대문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목으로 이름 붙이고서 그 중앙에 보신각(普信閣)을 자리잡게 하였으니, 서로를 소통시켜주고 결속시켜주는 신뢰의 덕은 모든 덕목의 중심이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한 국가와 사회는 백성들의 신뢰가 있어야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이미 불신이 깊이 뿌리를 내려 국가의 병(國病)이 된 것이 아닐까?  정부기관이 시책을 발표해도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은지 의심하게 되고, 정당이 정견을 내세워도 속 셈이 무엇인지 의심하게 된다. 불신이 전염병처럼 사회 구석구석에 퍼져 있으니,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는 냉소적 발언이 입버릇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불신의 병을 치료하지 않고는 경제성장도 선진국 진입도 자주국방도 복지사회도 모두 공중누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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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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