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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내다보았던 이이 · 허균 ·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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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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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932 회 -

이이 · 허균 · 정약용

대학교수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간행하는 「교수신문」이라는 언론에서 지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단어를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어리석고 용열한 군주를 만나 무도한 정치가 행해졌음을 지적하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년은 어떤 사자성어가 등장할 것인가요. 알 수야 없지만 ‘혼용무도’라는 단어를 벗어나기 어려운 해가 또 금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일이나 정치 현실을 살펴보면 지난해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나아진 것이 뭐가 있을까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세상입니다.

답답하고 무도한 세상이 계속되다 보니 옛날 뛰어나게 빛나던 어진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율곡·교산·다산이라는 세 분은 살아가던 시대가 다르고 처했던 입장이야 달랐지만, 잘못되어 가는 세상에 탁월한 애국심을 발휘하여 제대로 되어가는 나라와 세상을 만들려는 선견지명의 견해를 지녔었음은 세 분이 대체로 비슷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시의(時宜)를 정확히 파악하고 토붕와해(土崩瓦解) 직전의 나라를 구제할 방책을 간곡하게 건의했던 율곡의 주장은 벌떼처럼 떠들며 방해하고 가로막던 반대파들의 주장에 막혀 전혀 실현되지 못하는 불행을 당했습니다. 허균의 주장에 자세한 사연이 나옵니다.

“이이가 곤욕을 당했던 것으로는 논자들이, 공안(貢案)을 고치려 했음은 불편했다느니 여러 군(郡)에 정규의 군대 이외의 군대를 양성해야함(십만양병설)은 부당하다느니, 곡식을 바치고 관직을 제수(除授) 받음은 마땅치 못하다느니, 서얼에게 벼슬길을 열어주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라느니, 성(城)과 보(堡)를 다시 쌓자는 것도 합당하지 못하다고 가로막았던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뒤에 왜적을 막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고 부지런히 강구하던 방책으로는 위의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대체로 이이가 앞날을 내다본 것은 수십 년 전에 이미 명확하였다”(허균:「政論」)

허균의 이런 주장은 참으로 의미가 깊은 주장입니다. 당파에 결코 크게 기울지 않았던 이이에게 서인 편을 든다고 가장 강력하게 비난하고 헐뜯던 사람은 바로 동인이던 허균의 아버지 허엽과 형이던 허봉이었습니다. 당파심에서 벗어난 공정한 안목으로 사람과 일을 평가하던 허균은 역시 대단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또 다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산은 남인에 속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남인에서 가장 존숭하던 퇴계 선생을 높이 평가하고 숭앙했습니다. 그러나 어둡고 무도한 세상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나라의 문물제도를 경장(更張)하자던 율곡에게 전적으로 찬성하면서 그의 주장을 확대 개편하여 개혁논리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남인이라면 비방하고 헐뜯으며 욕만 하던 율곡의 경세철학에 찬동하던 허균과 다산은 역시 선견지명이 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당파를 떠나, 이 어둡고 무도한 세상을 이끌며 밝힐 율곡·교산·다산 같은 지도자들을 그리워함은 그러한 이유입니다. 공정하고 공평한 마음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를 찾아내는 일이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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