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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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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펀더멘탈 

민 병 욱(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자꾸 “어렵다”, “힘들다”고 하면 실재보다 더 어렵고 힘들어진다니 그런 말은 안하겠다. 하지만 한 출판사 친구가 들려준 이 얘기만은 하고 넘어가자. “대학가와 중고교 앞 중소형 서점들이 속속 문을 닫는다, 앞으론 지하실 미로 속 대형 서점만 남게 될 것이다.” “학문이 깊은 어느 교수가 원고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찾았다 속절없이 물러났다, 언제 책이 돼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은행, 자동차회사가 흔들리고 건설사가 워크아웃 되는 마당에 규모가 작은 출판의 불황쯤이야 눈에 잘 안 띌지 모르겠다. 청년실업이 사상 최악이고 해고유령이 회사를 어슬렁거리는 마당에 책 얘기는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 그렇다. 요즘 정부가 혼이 빠져 몇 십조 원짜리 둑 터진 델 막기 바쁜데 골방 규모 출판사까지 손들고 “저요, 저도 살려주세요!” 외쳐봤자 들릴 리 없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그렇지만 출판사 서점 다 쓰러지고 책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린 정말 알고 있는가. 특히 정부는 알고나 있는가? 



위기는 산이라면 기회는 바늘 

요즘 위기는 산만큼 커 보이고 기회는 바늘처럼 작아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 세계경제 종주국 미국이 무너지는 바람에 속절없이 당한 위기니만큼 뾰족한 대책도 없고 우선 말로라도 국민을 위로하자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나 말뿐이 아닌 실제로, 이 위기를 기회로 엮어내지 못하면 그 결과는 너무 참담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풍랑에 넋을 놓고 그냥 휩쓸려만 간다면 그건 퇴출이요 종막이고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꿔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일은 뭘까. 당연히 지난 문제점을 면밀히 살펴 반성함으로서 앞길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잘나갈 때는 그냥 달리기만하면 됐지 왜 달리는지 어떻게 달리는지 생각할 짬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어쨌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으니 지나온 길과 앞길을 살펴볼 시간이 생겼다. 이건 어쩌면 다행이다.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 것, 바로 그 점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두 번째는 확실한 재활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남 따라 덩달아 뛰고 남이 넘어지자 함께 자빠졌다면 이젠 혼자서도 멀리 보고 달릴 수 있는 실력 체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현 글로벌 위기는 미국서 부터 번진 시장만능주의와 탐욕의 결과고, 우리는 거기에 과도한 수출의존, 작은 정부, 고물가에 가계 빚 급등까지 복합 작용해 위기의 골이 깊어졌다고 한다. 이제 덜건 덜고 채울 건 채워 실력과 체력을 갖춘 다음 다시 뛰어야 한다. 그래, 알겠는데 그럼 방법이 뭐냐고? 그걸 가르쳐주는 첩경은 책 속에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앞서 출판사 친구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서점, 출판사가 문을 닫고 좋은 책 찾기가 힘들어진 상황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단지 미국 발 위기 탓에 갑자기 우리 출판계가 불황에 내몰린 건 아니란 얘기다. 그전부터 책은 안 팔렸고 국내필자의 노작(勞作)과 서점 수, 국민독서량은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거기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중 하나로 우리가 남 따라 무작정 달려온 것, 일과 삶의 최우선을 오직 돈, 경제에만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것이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해 위기를 증폭시킨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 때마다 우리는 펀더멘탈 얘기를 자주 했다. 외환위기 때도 그렇고 지금도 우리는 “펀더멘탈이 튼튼해 국가도산 우려는 전혀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마 달러 보유고가 많고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걸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렇다. 돈과 경제 시스템이 나라를 지탱하는 줄기임을 부인할 순 없다. 그렇더라도 국가 펀더멘탈은 무엇보다 국민이고 그들의 삶의 질, 교양, 지식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인식 위에서 정부가 위기에 대응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덩치 큰 회사 살리는 돈의 몇 십 분의 일만 잘라 책과 출판, 서점의 회생에 붓는다면 미래를 위해 가장 알찬 투자가 되지 않겠는가. 불황기엔 출판계가 맨 먼저 호각을 불고 회생은 맨 나중에 한다는 정설을 깨는 정부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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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민병욱 
·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 경원대 초빙교수 
· 전(前)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출판국장 
· 저서: <들꽃길 달빛에 젖어>(나남출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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